공주 중동 성당/대전교구
공주 중동 성당
대전교구
주보성인: 성모 성탄
설립일: 1897년 5월 8일
1901년 4월 금사리 성당(현, 충남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을 분할,
1906년 5월에는 옥천 성당(현, 충북 옥천군 옥천읍)을 분할, 설정.
현 공주 중동 성당의 전신인 공주 본당은 합덕 성당과 공세리 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는데 1897년 5월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기닝 진보안 베드로 신부가 임명되었고, 본당 설립 당시 공주읍내에는 천주교와 관련된 근거지가 전혀 없어서 기낭 신부는 임시로 공세리 성당 공소였던 유구의 요골공소(현,충남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거쳐하면서 관찰사가 주재하고 있는 공주읍내 중심지였던 국고개 언덕 위에 현재 부지를 매입하여 1897년 6월에 이전하였다.
현 성당 건물은 1921년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마르코) 신부가 서울 약현 성당을 모델로 직접 설계하여 1936년 공사를 시작하여 1937년 고딕식 종탑을 갖춘 십자형 새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5월 12일 축성식을 가졌는데 현재는 본당과 구사제관(현, 교육관)만 남아 있다.
1982년 9월 공주 교동 성당을 분리하면서 공주 중동 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 곳 중동 성당과 사제관 건물은 1998년 7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42호 지정되었다.(중동 성당 홈피에서 발췌)
충남 공주시 성당길 6
이 묘는 중동성당을 지으신 최종철 마르코 신부님의 하악골(아래턱뼈)을 안치하여 2008년 8월 19일 복원된 무덤이고,
최 신부님의 유해는 교구방침에 의하여 2003년 4월 9일 전의 신학교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공주 중동 성당을 직접 설계하고 완성한 최종철 신부는 1945년 선종할 때까지 24년 5개월간 사목하시다 이 곳에 묻혔다. 또한, 최종수 요한은 최종철 신부님의 형님으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 공주를 점령한 인민군이 성당에 들어와 마구 총질을 하며 성물을 훼손하고 성당을 더럽히는 것에 분개하여 항의하다가 그해 7월 성당 마당에서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해 순교했다.
2010년 순교자 성월에 최종철 신부 묘 바로 옆에 순교 현양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