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연서원檜淵書院-경북 성주
회연서원檜淵書院
경북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선조 16년(1583)에 회연초당(檜淵草當)을 세우고 인제를 양성하던 곳에다가
대유학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5년(16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숙종 16년(1690)에 왕으로부터 ‘회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74년에 복원되었다.
정구는 조선 시대의 학자이며 문신으로,
외증조 김굉필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풍을 세웠으며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다.
공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한강 정구 신도비
이 신도비는 1633년(인조11) 청주정씨 집성촌인 수성리 갓말마을 뒤 창평산에 조성된 정구 묘소 부근에 세워졌다가
분묘를 성주읍 금산리의 인현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1668년(현종 3) 현재 위치인 회연서원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현도루(문루)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백매원은 현도루를 지나자마자 좌우에 있는 매화나무 밭이다
한강 정구가 직접 백매원이라 불렸다.
초당을 짓고서 심은 백매화 100그루는 시간이 흐른 현재 세 그루만이 남아있다.
문루를 지나면서 왼쪽의 백매원
문루를 지나면서 오른쪽의 백매원
중앙에 보이는 느티나무는 400살이 넘은 보호수이다.
가운데 건물이 회연서원의 중심부인 '강당'이다
양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지경재는 중앙의 강당을 중심으로 서재(西齋)로 유생들의 기숙사이다.
명의재는 중앙의 강당을 중심으로 동재(東齋)로 유생들의 기숙사이다.
숭모각은 유물을 전시한 유물전시관이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석담 이윤우를 종향(從享)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다.
향현사에는 신연 송사이, 용재 이홍기, 육일헌 이홍량, 모재 이홍우, 동호 이서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무흘구곡의 첫 출발지 제1곡 봉비암은
구 사당 뒷산 봉우리에 있다.
정구 선생님이나 유생들이 이리로 올라와 여가를 보내면서
시한 수 정도는 읊었을 것 같다.
봉비암에서 내려다 본 풍광
완연대는 봉비암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