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조 터/서울대교구
천주교인들이 압송되어 문초를 받던 곳
형조 터
서울대교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 세종문화회관과 세종대왕상 중간 )
형조는 조선시대의 중앙관서인 육조의 하나입니다. ‘추관’ 또는 ‘추조’라고도 했으며, 사헌부 ․ 한성부와 아울러 삼법사라 일컬어지기도 했습니다. 형조는 한성부 서부 적선방에 있었는데,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 시작은 정조가 즉위한 지 9년째 되던 1785년에 발생한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신자들이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집회를 갖던 중, 형조의 금리들에게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최필공 토마스 ․ 최필제 베드로 ․ 윤운혜 루치아 ․ 정철상 가롤로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고, 김천애 안드레아 ․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은 전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 남명혁 다미아노 ․ 김효임 골롬바 ․ 김효주 아네스 ․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전장운 요한 ․ 최형 베드로 성인 등도 형조를 거쳐 갔습니다.
(출처:서울대교구 홈페이지)
세종문화회관을 쳐다보고 오른쪽 맨 끝 문이 있는 정도(노란색 화살) 위치에서
세종대왕상 쪽으로 중간 쯤 돌턱을 지나자마자 나무바닥이 있는 곳에
형조 터와 천주교 신앙 증거 터를 알리는 표시판(적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