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공소

구룡리공소/대전교구

오안드레아 2021. 4. 2. 22:00

구룡리공소

대전교구

 

합덕 성당 소속으로 있다가

1992년 당진 성당으로 편입되었고, 이때 부터 본당으로 미사 참례를 하게됨.

 

구룡리는 신자 자녀들의 신심 교육에 특히 힘쓴 교우촌으로

강습소도 설립하여 자녀들의 교리 교육에도 힘썼으며

세 명의 신부와 여러 수도자들을 탄생시킨 성소의 고장이다.

 

구룡리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840년 박해를 피해 떠돌던 한 신자가 정착하기 위해 처음 이곳에 오면서였고, 이곳 교우촌의 신자들은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꾸렸고, 옹기점이 잘되자 규모가 큰 교우촌이 되었다고 한다.

구룡리 교우촌과 이웃하고 있는 사근절 교우촌(현 행정지명: 당진 구룡리)에는 1901년에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를 맞이함으로써 정식으로 공소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 구룡리에 공소가 설립되기 전의 신자들은 사근절로 미사참례를 다닌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발췌)

 

1909년 합덕본당의 제3대 주임 크렘프 신부 시절 기록에 대화리 공소 이름이 있다. 당시 구룡리와 이웃의 대화리는 행정 구역이 분명하기 전이여서 한 마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구룡리를 대화리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로인해 구룡리 공소를 대화리 공소라고도 불렸다.

 

지금의 공소 강당은 1947년 9월에 건축된 것이다.

 

충남 당진시 도동길 4-20

 

상량문 내용: " 지극히 놉흔대셔는 텬쥬꺼 영광이요 따희셔는마암이 됴흔 사람의게 평화함이로다"

(지극히 높은 데서는 천주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에게 평화가 있음이로다)

 

 

 

"天主降生一千九百四拾七年九月二拾六日上樑"

(천주강생 일천구백사십칠년 구월이십육일 상량)

상량문의 내용으로 서기 1947년에 건축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건물이 기우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강해놓은 와이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