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교구 성지 19

한티순교성지-대구대교구 성지

신앙선조들이 살고, 순교하고, 묻힌 곳한티순교성지대구대교구 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1길 69 한티순교성지는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이다.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를 전후하여박해를 피한 교우들이 팔공산 중턱으로 숨어들어1850년 말경에 한티는 큰 교우촌을 이루게 된다. 병인박해(1866년)가 진행 중이던 1868 봄,한티에 들이닥친 포졸들은 배교하지 않은 많은 교우들을그자리에서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박해소식을 듣고 인근에 살던 교우들이 한티에 들어왔을 때에는이미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이 산야 곳곳에서 썩어가고 있었다.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하여 옮길 수가 없었기에순교한 그 자리에 시신을 안장하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한티 순교자들의 묘는 모두 37기로박해 ..

새방골성당-대구대교구 순례지

새방골성당대구대교구 순례지(성지) 대구시 서구 새방로27길 9 (상리동 557-1) 새방골[송골]대구 서쪽에 자리한 와룡산 동쪽 자락에는 상리, 송골, 죽전 마을을 아우르는 새방골이 있다. 1839년 기해박해 무렵 한티로 피난했던 김현상 요아킴 가족이 1850년대에 새방골로 이주했다. 김현상의 딸, 김 아가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10세 아들 서상돈와 7세 서상정을 데리고 1859년 친정이 있는 새방골로 이주했다. 1860년에는 경신박해를 피해 이장언 프란치스코 가족이 피난왔다. 이곳에 살던 김현상의 아들 김응순은 병인박해 때는 세 번이나 매를 맞고 풀려나기도 했다. 병인박해가 끝나자 피난 갔던 신자들이 대부분 다시 돌아와 큰 교우촌으로 부활했다. 1885년 12월 신나무골에 정착했던 김보록(로베르,1..

비산[날뫼]성당-대구대교구 순례지(성지)

경상감영의 사형장에 세워진비산[날뫼]성당대구대교구 성지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3대 사형장(장대벌-현 봉덕동, 날뫼-현 비산동, 관덕당) 중 하나였던 날뫼(비산, 飛山)에는 이 곤자가의 선대 가정 때부터 신자들이 거주하였다. 현재 비산성당이 위치해 있다. 날뫼에 살던 이응칠 토마스는 이윤일 요한의 매부로, 1867년 병인박해 때 관덕정에서 순교한 성인의 시신을 순교 당일 아미산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2년 후 성인의 아들 이의서 마티아와 함께 날뫼로 모셔와 안장했다.  비산성당은1928년 6월 12일에 설립 되었고주보성인은 '성 바오로 사도 개종'이다. 주소: 대구시 북비산로67번길 31

관덕정순교기념관-대구대교구 성지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관덕정순교기념관대구광역시 중구 관덕정길 11 (남산동) 관덕정은 조선시대 군사 훈련장이자 처형장이었으며 대구대교구 제2주보 이윤일 요한 성인이 1867년에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을해박해와 정해박해, 기해박해를 거치면서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모두 17명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목숨을 바쳤다.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1991년 1월 옛 관덕정 터에 관덕정순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이곳 지하성당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출처:대구대교구 홈페이지)  순교한 자리 관덕당관덕당은 대구지역의 장대벌(현, 봉덕동)과 날뫼(현 비산동)와 함께3대 형장 가운데 한 곳이다. 천주교인들이 1816년, 1839년, 1867년, 1868년에사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관덕당에서 처형당했다...

경상감영의 감옥(터) 대안성당-대구대교구 순례 성지

경상감영의 감옥(터)대  안  성  당대구대교구 순례지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후 죄인들을 잡아 가두는 감옥이 설치되었는데, 그 위치는 옛 경상감영 서북편인 대구시 중구 서내동 8-1번지 일대이며, 이곳을 옷골 혹은 옥마당이라 부른다. 1815년 을해박해 때는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영양 일월산 등지에서 71명이 체포되어 그 중 33명이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사료에 나타난 순교자 14명 중 7명은 이 곳 감옥에서 옥사했으며, 나머지 7명은 1816년 11월 1일 대구 관덕정 형자에서 참수 치명하였다. 1827년 정해박해 때는 31명이 체포되어 25명은 석방되고, 3명은 감옥에서 옥사했으며, 나머지 3명은 1839년 4월 14일(음)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순교하였다.

경상감영공원-대구대교구 성지

재판 및 문초, 구금장소경상감영공원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99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감사의 집무처였으며 지방에서 압송되어 온 범법자를 이곳에서 취조·구금하였다. 박해시대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신문을 받았다. 을해박해와 정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순교자들 중 8명이 관덕정에서 참수되었고, 감영에서 옥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순교자의 수는 18명에 이른다. 선화당은 경상감영의 중심으로 경상도 관찰사가 머무르며 나랏일을 보던 곳이다.

계산주교좌성당-대구대교구 성지

계산주교좌성당대구대교구 성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대구본당 초대 주임 로베르 신부는 1899년에 지은 십자형 기와집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1903년 11월에 두 개의 종탑을 갖춘 고딕양식 벽돌 건물을 다시 건립하였는데, 이 성당이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됨에 따라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1918년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에 의해 증축되어 1919년 5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 바 있다.(출처: 대구대교구 홈페이지)  계산성당은 1885년 12월 1일에 설립 되었고,주보성인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1902년에 완공하였고,1911년에 주교좌..

성유스티나신학교-대구대교구 성지

67인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 그중 5명의 주교가 탄생한성  유  스  티  나  신  학  교대구대교구 성지 대구시 중구 명륜로12길 47 (대구교구청 내) 1914년 10월 1일에 개교한 교구 최초의 신학교이며, 현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출발점이 된 건물이다. 드망즈 주교가 신학교 설립을 위해 세계각지에 원조를 구하였을 때 상하이에 거주하는 익명의 신자가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로 모시는 조건으로 거액을 희사하였으므로, 주보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유스티노신학교’가 되었다. 1945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되기까지 67명의 사제를 배출하였으며, 1991년부터는 대구관구 대신학원이 이곳으로 옮겨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소신학교 입학은 보통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 수준을 필요로 하였다. 소신..

성모당-대구대교구 성지

성   모   당대구대교구 성지 대구시 중구 남산로4길 112(대구교구청 내) 성모당은 1918년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한국명: 안세화) 주교에 의해 건립되었다.안세화 주교는 부임 후 루르드의 성모님께 3가지를 청원하였다. “주교관과 신학교를 건설하고, 주교좌성당을 증축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주교관을 위해 예정된 대지안의 가장 좋은 장소에 루르드의 동굴과 유사한 동굴을 세워드리겠습니다”라고 허원(許願)하였다. 그 세 가지 청이 모두 이루어짐에 따라드망즈 주교는 허원한 대로 성모당을 건립하여 1918년 10월 13일에 축성하였다.   동굴 윗면에 표기된 1911은 대구대교구가 설립된 연도이며,1918은 안주교께서 교구를 위하여 하느님께 청한 3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진 해를 가리킨다.“EX VOTO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