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교구 성지 20

겟세마니 피정의 집-춘천교구 순례지

평화와 보속을 위한 기도의 집겟세마니 피정의 집춘천교구 순례지 1991년 건립 강원도 인제군 남면 빙어마을길 196 ‘겟세마니 피정의 집’은 성 골롬반 선교회 조선희 필립보(Philip Crosbie) 신부가 건립한 평화, 회개와 보속을 위한 순례지이다. 조 필립보 신부는 1939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940년 한국에 입국해 홍천본당 보좌 신부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만 58년 동안 홍천, 간성, 원통, 포천지역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 구금과 추방을 당하였고, 한국 전쟁 때에는 공산군에게 붙잡혀 압록강까지 끌려가는 ‘죽음의 행진’을 하였으며, 3년간 전쟁포로로 수용되는 고초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의 죽음을 목격한 조 신부는 포로..

포천성당-순례지/춘천교구

홍인 레오 성지 성당 포천성당 춘천교구 순례지 주보성인: 성가정 설립일: 1956년 2월 21일 관할공소: 신평공소 자매 결연: 북강원도 황해남도 판교군 송화본당 서울교구 의정부본당 관할 공소에서 1955년 11월 이한림(가브리엘) 장군이 석조로 된 성당을 완성하고, 이후 의정부본당 관할 아래에 있던 많은 공소를 군종신부가 겸임하다가 1956년 2월 21일 초대 본당 신부로 김진하 신부가 부임하면서 포천 성당이 설립되었다. 경기도 포천시 왕방로 191 등록문화재 제271호, 성 가브리엘 성당 (구, 포천성당) 1955년 건립 육군 6군단(군단장 이한림 장군)이 지은 성당이다. 1990년 화재로 목조 마루바닥과 지붕틀 등이 소실되긴 하였으나 한국전쟁 직후에 건축된 석조 성당의 전형적인 건축의 특징을 잘 간..

광암 이벽 진묘터와 복원된 생가/춘천교구 성지

광암 이벽 진묘터와 복원된 생가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산289-1춘천교구 성지 광암 이벽 진묘 터: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산289-1광암 이벽 생가 터(추정):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543-1번지복원된 생가: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541-23  (광암 이벽 유적지 내)  광암 이벽은 한국 천주교 초기 평신도 가운데 주요 역할을 한 지도자이며, 한국 천주교회는 현재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안건으로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이벽은 1777년 권철신, 정약전 등과 함께 강학을 하였고, 서학을 학문에서 종교로 승화시켰다. 정조 8년(1784년) 이승훈의 부친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이승훈도 함께 가서 세례를 받고 올 것을 부탁하고 그 절차를 가르쳤다. 이승훈이 우리나라 최초..

죽림동성당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

죽림동성당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춘천교구  죽림동 성당의 뒤뜰에는 성직자 묘역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거하고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다가 희생된 순교자들이 함께 모셔진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이 묘역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당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신부,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 진 야고보(James Maginn) 신부의 유해가 안장되어있고 북한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었던 백응만 다마소, 김교명 베네딕토, 이광재 티모테오, 손 프란치스코(Francis Canavan) 신부의 가묘가 조성된 곳이다.아울러 ‘죽음의 행진’ 속에서도 살아남아 교황..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춘천수련소)-순례지(성지)/춘천교구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춘천수련소)춘천교구 순례 성지 주교관은춘천교구장 주교의 거처이자 선교사들이 교구 일을 돕거나 기거하는 거점으로 강원도 지역을 담당하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1958년에 건립되었다.이 건물은 당시의 전형적인 외국인 선교회 풍으로 지었는데, 유별나게 서향으로 세운 것은 햇빛이 아쉬운 아일랜드 풍습의 영향으로 보인다. 6.25 전쟁이 끝난 뒤, 포격으로 피해가 많았던 춘천에 아일랜드 풍으로 세워진 건물로서,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건축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춘천교구 신앙교육의 요람인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 수련소는 1959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들이 강원도 지역 선교를 담당할 수녀를 양성할 목적으로 지어졌다.이 건물은 1969년까지..

물구비공소(터)-순례지(성지)/춘천교구

물구비공소(터) 춘천교구 순례지(성지) 홍천 물구비 공소는 우리나라 조선 말기에 여러 차례에 걸친 천주교 박해를 피해 강원도 산간벽지로 숨어든 교우들로 이루어진 공소 중의 한 곳이다. 물구비의 교우들은 옹기 장사를 하며 교우촌을 형성해 왔으나 신부 없이 80여 년을 지냈다. 그러던 중 1888년 강원도에 파리외방전교회 르메르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풍수원 본당(현 원주교구)이 생겼다. 물구비 공소는 풍수원 본당의 29개 공소 중 한 곳이 되었고, 1948년에는 물구비(현 양덕원, 주임신부 최일호 라우렌시오)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물구비 본당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략으로 전소되었던 것을 한 세대 당 벽돌 한 장, 나무, 돌 등의 재료들을 배당받아 25평의 건물을 다시 지어 활기찬 신앙생활을 이어갔..

곰실(고은리)공소-순례지(성지)/춘천교구

춘천교구의 요람곰실(고은리)공소춘천교구 순례지(성지)설립: 1920년 9월관할본당: 거두리성당  곰실은 춘천 동내면 고은리(古隱里)의 옛 지명이며, 엄주언 마르티노의 열성으로 태어난 곰실 공소는 현 춘천교구의 요람이다. 춘천시 동면 장학리 노루목에 살던 엄 마르티노는 우연히 접한 천주실의와 주교요지에 감명을 받아 참 신앙을 찾아 나섰다. 그는 온 가족을 데리고 천진암으로 가 삼년간 천주교리를 더 깊이 공부한 끝에 영세한다. 그리고 서면 월송리로 돌아왔으나 제 고장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다. 그렇게 밀려난 그는 1910년경 곰실 윗너부랭이에 자리 잡고 열심히 전교하여 교우 수가 점점 늘자 아랫너부랭이로 내려와 모범적인 신앙공동체를 일구어 낸다. 엄 마르티노를 중심으로 시작된 공동체는 처음에는 가족들끼리 ..

홍천성당-순례지(성지)/춘천교구

홍천성당 춘천교구 성지(순례지) 주보성인: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1923년 6월 21일 설립 홍천 성당은 1923년 6월 21일 춘천 고은리본당 관할 공소였던 송정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 홍천본당의 설립은 1886년 박해시대가 끝나고 1890년경 현재의 홍천군 화촌면 송정리에 신자가정이 몇 가구 정착하면서 공소 태동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이 무렵 결운리공소 지역에는 송정리에 신자들이 정착하기 1년 전 부터 신앙생활을 해나오는 신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옹기굽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고 신자수는 점차 늘어 갔다. 하지만 결운리 공소는 산골짜기에 위치해 교통이 불편하여 다른 지역에 공소를 설립하는 것이 논의되면서 옮기게 된 곳이 송정..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터-순교사적지(성지)/춘천교구

6.25전쟁 때 공산군에게 피살당한 성직자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터춘천교구 순교사적지(성지)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는 1940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1947년 입국, 1949년 묵호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이 배를 마련하여 피난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양들을 버리고 목자가 혼자 도망갈 수 없다”라고 거절하였다. 그는 공산군이 쳐들어오자 당시 전교회장의 집 뒷방으로 피신하여 몰래 미사를 봉헌하였다.하지만 그는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던 중 라 신부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며 끌려갔다.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묵호에서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공산군에 의해 밤재굴에서 총살당하였다. 라 신부의 유해는 1951년..

포천순교성지/춘천교구

복자 홍인(레오)가 참수형으로 신앙의 씨를 뿌린 증거터 포 천 순 교 성 지 춘천교구 복자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과 복자 홍인(레오)는 父子지간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부자父子가 같이 잡혔고 아버지 홍교만은 그해 한양 서소문밖에서 순교하고, 아들 홍인(레오)는 다음해 1802년 1월 포천 저작거리(現 순교현양비)에서 참수로 순교. 복자 홍교만(F.하비에르)은 고종사촌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으로 부터 교리를 배우고 복자 홍인(레오)는 아버지 홍교만으로 부터 교리를 배움. 1794년 父子는 주문모(야고보) 신부로 부터 세례 받음.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정약종의 아들 정철상(가롤로)의 장인. 홍인(레오)은 홍익만(안토니오),황사영(알렉시오)등과 교류.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17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