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교구 성지 8

백령성당-백령도/인천교구 순교 신심 순례지

인천교구 순교 신심 순레지백령성당2019년 3월 19일 교구 순교 신심 순례지로 선포 주보성인: 성 야고보 1959년 5월 9일 설립 관할공소: 용기포공소,  신화동공소,  소가을리공소,  사곶공소,          화동공소,  장촌공소,  연화리공소,  가을리공소,                                                                두무진공소, 관창동공소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254번길 66  백령도는 천주교 선교사의 해로(海路) 입국 거점한국천주교회의 초기에 몇몇 선교사들이 중국의 변문과 의주의 관문을 통하여 조선에 입국하였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앵베르(Imbert) 주교, 모방(Maubant), 샤스탕(Chastan) 신부가 1839년에 잡혀 문초..

반주골 이승훈의 묘 /인천교구 성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영세자 이 승 훈 의 묘 인천교구성지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1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며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인 이승훈(베드로)의 묘 앞에 서면 그가 1801년 신유박해로 참수되기 직전에 읊었던 한시(漢詩)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달은 비록 서산에 지더라도 하늘에 남아 있음'과 같이 남이 비록 나더러 배교했다 말하더라도 내 신앙은 천주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물이 비록 못 위로 치솟아도 그 못 속에 온전함같이' 내 목숨을 앗아 가도 내 신앙은 변함이 없다.”인간적 약점으로 인해 여러 차례 천주를 부인한 이승훈은 이승을 하직하는 자리에서 스스로에 대한 애절한 후회와 자책을 이 한 구절 시구(詩句) 속에 절절히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 몇 마디 한시를 통해 결코..

성모순례지(성모당)-인천교구 성지

신앙의 안식처로 위로와 평화를 전해주는 장소 성모순례지(성모당) 인천교구성지 인천광역시 동구 박문로 1 (인천교구청 내) 천주교 인천교구 성모순례지(이하 ‘성모당’)는(은) 성모님께 전구(轉求)를 청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교구민들의 간절한 청원과 기도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제2대 교구장이신 故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가 응답하여 마련된 곳이다. 현 교구장인 정신철 요한세례자 주교는 2017년 10월 13일 기공식 미사에서 “故 최기산 주교님이 2015년 12월 13일 에 대한 사목서한을 발표하고 2016년 5월 30일 갑자기 선종하시기전까지 성모당 부지 선정과 설계 디자인 승인, 건축위원장 임명 등 성모당 조성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준비해 두셨기에 이렇게 파티마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

제물진두성지-인천교구

제물진두성지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병인박해 이후, 종교적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은, 10명의 천주교 순교자들의 넋이 서린 순교지이며, 1845년 4월 김대건(안드레아) 부제님이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1868(무진)년에 박순집(베드로)의 집안인 이모 김씨, 남편 손 넙적이(베드로), 사위 백치문(사도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처형되었고, 1871(신미)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인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의 후손인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 증손자 이연구, 균구 형제, 그리고 이(손)명현, 백용석, 김아지 등 6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첫 성직자인 김대건(안드레아)부제가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보고, ..

갑곶순교성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인천교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강화도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부터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1795년 조선 최초 선교사로 입국한 신부가 철종의 조모 손씨(은언군의 처)와 며느리 신씨에게 세례를 준 것이 조정에 알려져, 왕족이었던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강화도는 19세기 후반 한국역사에서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만나 첨예한 갈등을 빚은 곳으로 상징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가 유입될 때 이용되던 육로 통행이 여의치 않게 되자, 1845년 5월 1일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고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를 비밀리 입국시키는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울 마포를 떠나 강화 갑곶 앞바다까지 오게되었다. 그 후로도 1..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인천교구 순례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 인천교구 순례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비고개로741번길 107 우리교회는 적게는 만명, 많게는 삼만 명의 순교자가 계시지만 우리가 이름 정도라도 알고 있는 순교자는 약 2,000여명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에 한국의 순교자들, 특히 ‘무명 순교자’들게 봉헌한 것이다.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돌(단두대)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죽음의 칼을 기다리고 있는 형태 왼쪽 사진은 성인의 두발과 상투이고, 오른쪽 사진은 성인의 유해에서 흘러나온 피가 섞어있는 알콜 유해 알콜 방부 작업 중 40여분이 지나면서 150여년이 지난 유해에서 갑자기 피가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우러나온 것을 그대로 보관한 것임 물고기(왼..

진무영순교성지/인천교구

진무영순교성지 인천교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643 (강화성당 내) 진무영(鎭撫營)은 1700년(숙종26)에 해상 방어를 위해 설치된 군영(軍營)이며,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1868년 5월 22일 최인서(요한,애오개 회장, 59세) 장치선(장주시 요셉 성인 조카, 59세) 박서방(박순집 베드로 형) 조서방(조가봉의 부친, 50여세) 등이 순교하였다. 특히 최인서와 장치선은 병인박해(1866-1871)로 성직자 12명 중 9명과 신자 10,000여 명이 처형되자, 생존 성직자 중 한 분인 리델(Ridel) 신부를 배로 천진으로 탈출시키고, 서양 배를 불려다가 신교(信敎)의 자유,남은 교우들의 구출, 성교(聖敎, 천주교)전파 등의 목적으로 상해까지 다녀왔다는 죄로 ..

성체성지- 옛 김포성당/인천교구

구) 김포성당 성체성지 인천교구 주보성인: 매괘의 모후 설립년: 1946년 경기도 김포시 북변로 29-12 김포성당은 걸포리 공소로 시작하여 8.15 광복 후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1946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년 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제3대 신원식 루카 주임신부 및 교우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당시 마송에 주둔해 있던 해병대(이영우 대령)의 군장비 지원으로 1956 12월 17일 봉헌식을 가졌다. (등록문화재 542호) 오른쪽의 석조 건물이 옛 김포성당(1946년 건축)이고 왼쪽의 붉은 벽돌 건물은 신축(1997년 착공, 1999년 착공)한 성당이다.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석조 건물로 된 옛 성당이 2015년 11월 1일에 선포한 성체성지이다. 역사상 첫 번 째의 성체 기적이 일어난 란치아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