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교구 성지 9

명례성지-마산교구

복자 신석복 마르코가 출생한 곳명    례    성    지마산교구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3  낙동강 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명례성지는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으로일찍이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든 곳이다. ▼성모동산성지 입구에 조성된 성모동산은성모상과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명례성모승천성당명례성모승천성당은 1896년 설립된영남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에서는 첫 번째 본당이다. 성당의 초대 신부는 우리나라 세 번째 사제인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이다.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는 이곳 명례성당에서 첫 번째 사제로 사목하시다가 이곳에서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성당 건물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인근, 현재의 성모동산 부지에 건립되었는데,1928년 권영..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묘-마산교구 성지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묘마산교구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312-20(진영성당 공원묘지) 복자 신석복 마르코는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서 살았다.명례 지방은 일찍이 피난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신석복과 그의 가족들은 이들의 권면으로 신자가 된 듯하다. 그의 형제들은 신석복이 순교할 때는 신자가 아니었고훗날 모두 입교하였다. 신석복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신석복은 1866년 2월 15일(음)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신석복의 유해는 그의 아들 이나시오가 돈을 가지고 대구로 가서모셔왔다. 그러나 명례에는 지방 유지들의 반대로 모시지 못하였고부득이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의 노루목(김해군 한림면 장방리)에안장하였다. 그후 진영 본당에..

복자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 묘-마산교구 성지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마산교구 경남 김해시 진레면 청천리 산30 박대식 빅토리노 순교자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다.무진박해(1868) 때 조카 박수연과 함께 체포된다.그후 김해 관아로 압송되어 3일간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이송된다.1868년 8월 27일(음) 순교자는 조카 박수연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나이는 57세였다. 순교자의 가족들은 시신을 모셔와 고향 선영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 외인들의 반대로 인근 챗골(지금의 김해시 청천리 다곡)에 평장으로 장례를 지냈다.그후 1956년 봄,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하고 순교자 부인의 묘도 이장하여 완전한 묘역으로 가꾸었다. 1966년 진영본당의 유창호 신부가 그때까지 전해..

김기량 펠리스 베드로 순교 사적지-통영

통영 김기량 펠리스 베드로 순교 사적지 마산교구 경남 통영시 세병로 26 (통영 삼도 수군 통제영) 김기량(1816~1867, 펠릭스 베드로)은 제주 조천읍 합덕리에서 태어났다. 1857년 폭풍우로 중국 광동 해역에 표류하다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조선인 신학생 이만돌(바올리노)을 만나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아, 제주 출신 첫 신자가 되었다. 1858년 1월 귀국 후 제주도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통영에서 장사하던 중 체포되어 통제영으로 압송되었다. 모진 형별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 1867년 1월 옥에서 교수형으로 51세에 순교하였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2014년 8월 16일 복자가 되었고, 2019년 마산교구에서는 통제영 옥이 있었..

사봉성지-복자 정찬문 안토니오의 묘/마산교구

사봉성지-복자 정찬문 안토니오의 묘 마산교구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길67번길 9-4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진주시 사봉면 출신으로 신자였던 아내의 권면으로 입교 영세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정찬문은 포졸에게 잡혀 진주 감옥에 갇힌다. 특히 그가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아기를 등에- 업고 주먹밥을 나르던 부인 윤씨의 격려는 그가 굴하지 않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기까지 커다란 공헌을 했다. 결국 이듬해인 1867년 1월 25일 순교자는 매를 많이 맞은 끝에 진주옥에서 참수 치명한다. 죽은 뒤 그의 일가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 왔는데 관에서 머리를 내 주지 않아서 머리를 가져오지 못한 채 하체만 장사지냈다고 한다. 즉 무두묘(無頭墓)가 된 것이다. 1946년에 순교자의 무덤을 찾을 때에 무두..

대산성지-복자 구한선 타대오

대산성지-복자 구한선 타대오 마산교구 경남 함안군 대산면 대산중앙로 183 1976년 대산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정중규 신부는 순교자 무덤이 외교인 묘역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같은 해 9월에 평림리 가등산으로 이장을 하고 비를 세웠다. 2014년8월 16일 순교자는 시복되셨고 가등산 순교자 묘역 주변으로 공장들이 대거 들어서자 관리 및 순례에 맞는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2016년 10월 20일 15대 최문성(마르코) 신부 재임 시 복자 구한선(타대오) 유해를 본당으로 모시고 새 성지를 조성하였다. 복자 구한선 타대오는 영남 순교사(331면)에 기록된 것을 보면 『구 다두는 함안 미나리골 출신으로 언제 누구에게 교리를 배워 영세했는 지는 잘 모르나, 1866년 병인교난 전에 경상도 남부지역 담임이던..

유삼이 묘

유삼이묘(유처자묘) 마산교구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산 53-2번지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순교자의 딸 유섬이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아버지 순교 후 아홉 살 나이로 거제도호부 관비로 유배를 왔다. 유섬이는 1801년 10월 거제도에 도착해 당시 거제부사(이영철)의 배려로 거제면 내간리 한 할머니의 수양딸로 보내졌다. 그녀는 거제에 머물면서 동정녀로서 삶을 살아가야할 종교적 신념으로 마을 사람들의 중매도 거절했다, 그녀는 평생 혼자 살면서 거제에서 처음으로 회양적(산적)을 만들어 마을사람과 나눠 먹는 등 함께 어울려 지내다 1863년 7월 일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유섬이가 세상을 떠나자 하겸락 부사가 장례비용을 치르고, 제문을 지어 바치고 묘비를 세워주었다. ..

윤봉문 요셉 성지/마산교구

거제도에 믿음의 씨앗을 뿌린 순교자 윤봉문 요셉 마산교구 복자 윤봉문(요셉, 1852~1888)은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8년 박해를 피해 거제도로 들어와 정착한 뒤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친 윤사우(스타니슬라오, 1827~1883)의 둘째 아들이다. 형과 함께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쓴 윤봉문은, 1887년 대구본당 초대 주임인 로베르 신부가 거제도를 방문했을 때 신부를 안내하고 교리교육과 공소예절을 돕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88년 지역 포졸들에게 체포돼 갖은 문초를 당했고, 끝내 배교하지 않고 진주로 압송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윤봉문은 지난 2014년 한국을 사목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됐다. 경남 거제시 지세포3길 69-22 순교자의 유해는 ..

거제 국산천주당/마산교구 유적지

거제 천주교 발상지 국 산 천 주 당 마산교구 순례지 경남 거제시 국산5길 5 이곳은 거제도에 처음으로 복음이 선포된 곳으로 최초의 신자인 진진보(요한)의 집터 중 일부이며 복자 윤봉문(요셉)이 진진보의 딸 순악(아네스)과 혼인하여 사시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후 이곳은 거제 최초의 공소가 되었다가 1926년 5월 30일자로 거제지역 최초의 성당이(초대신부 김후상 바오로) 설립된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장승포가 커지고 옥포가 쇠퇴함에 따라 본당은 장승포로 가고 이곳은 공소로 전락하였다. 그러다가 현대화 물결과 대우조선이 들어오면서 도시가 다시 커지고 1983년 다시 옥포성당이 재건되었으나 이곳이 아니라 현재 옥포성당이 있는 곳으로 이전되었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남아 있던 모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