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교구 성지 9

죽림굴(대재공소)-부산교구

국내 유일의 석굴 공소죽림굴(대재공소)부산교구 대재공소(1840-1868)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억새벌길 200-78 죽림굴(대재공소,1840-1868)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시대(1840-1888)의 공소로 언양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공소(1815-1860)에 이은 두 번째 공소이다.이 공소는 샤스탕 정 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1860년) 때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최양업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 신부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그 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오륜대순교자성지-부산교구

오륜대순교자성지부산교구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대로 106-1 1866년 병인박해에 이어 1868년 무진년 동래지역에서 일어난 박해로 8월 4일(양력 9월 20일) 수영장대에서 이정식 요한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정식의 대자였던 양재현 마르티노를 비롯하여 함께 옥에 갇혔던 여덟 분의 신자들이 군문효수의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명장동(동래구 명장동 산96번지)에 묻혀있던 이정식 요한 회장의 가족 네 분의 무덤(아들 이월주 프란치스코, 며느리 박조이 마리아, 조카 이관복 베드로)만이 조사 확인되어, 1977년 9월 19일 이곳 오륜대로 이장하여 ‘부산 순교자 묘소’로 꾸몄다. 현재에는 네 분의 무덤외에 다른 네 분의 무덤(옥소사 발바라, 서울 생원 이삼근 야고보, 차창득 프란치스코, 복자 양재현 마르..

조씨 형제 순교자 묘-부산교구 성지

조씨 형제 순교자 묘부산교구성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길26번길 9-19 병인박해 때 순교한 두 형제 조석중과 석정은자신들의 조씨 선산에 매장하려고 하였으나유교가 강했던 문중에서 죄인이라고 반대하였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배정문(배문한 신부의 증조부)씨가그의 집 언덕에 묻어 주면서순교 사실에 관한 사실이 배씨 집안에 전해 내려오고 있고,지금까지 묘소도 관리해오고 있다.

김범우 순교자 성지 - 부산교구

명례방 공동체 주역의 신앙이 잠든 곳김범우 순교자 성지부산교구 경남 밀양시 삼량진읍 만어로 652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라 할 수 있는 김범우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역관인 김범우는 1785년 을사추조적발 사건에 연루되어서울에서 밀양으로 유배를 왔다.그는 서학이란 신학문에 끌린 양반들과의 친교를 통하여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고 자신의 집을 초기 천주교의전례 장소로 제공함으로써 천주교를 학문적 연구의 수준에서신앙을 확산하는 차원으로 발전시켰다.또한 많은 중인 계층을 입교시켜 천주교의 보편화에 앞장섰다.유배온 후 고문의 휴유증으로 치명하였다.  한국천주교회의 공식적인 최초 순교자는 1791년 '진산사건'으로순교한 윤지충이다.그러나 비록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으나그보다 앞선 시기에박해와 형벌의 후유증..

수영장대순교성지-부산교구

부산의 골고타라 일컬어지는 순교지수 영 장 대 순 교 성 지부산교구 부산광역시 수영구 장대골로57번길 3  수영은 경상도 좌수영이 있었던 곳이고, 특히 이곳에 장수가 높은 대에 올라서서 명령하고 지휘하던 장대(將臺)가 있었다.가끔 장대 앞에서 중죄인을 처형하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신자 체포려이 내려졌을 때, 이정식의 가족들과 동래 교우들은 피신하였다. 그런대 1868년에 포졸들의 적극적인 신자 색출로 인해 이정식의 가족들과 동료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이곳 장대에서 여덟분이 8월 4일(음)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이정식 가족의 시신은  부산 가르멜 수녀원 뒷산에 묻혔다가 , 1977년 오륜대 순교자 성지 동산으로 이장하여 모시고 있다. 여덟분의 순교자 중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순교자..

울산병영 순교성지-부산교구

순교자의 숨결이 살아있는 울산병영 순교성지 부산교구 울산광역시 중구 외솔큰길 241 병인년 1866년 ,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있었던 이곳은 군사훈련을 하거나 중죄인을 처형하던 장대 마당으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특히 병인박해 때 가족들과 함께 죽림굴에 피신해 있다가 붙잡힌 허인백(야고보)과 김종륜(루카), 이양등(베드로)이 처형되어 군문효수를 당한 곳이다. 이 세 순교자들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복자품의 영예에 오르셨다. 복자 이양등(베드로), 복자 김종륜(루카), 복자 허인백(야고보) 3인 순교자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사형장 근처 동천강변 모랫벌에 가매장하였다가, 이후 1886년 신앙의 자유가 허용..

언양성당 신앙 사적지와 유물전시관-부산교구성지

언양성당 신앙 사적지와 유물전시관부산교구성지 둥록문화재 제103호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언양지역은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직후 그 선조들로부터 신앙의 씨를 받아첫신자인 김교희, 오한우로 부터 200년의 선교역사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품고 있는 곳이다. ▼ 언양성당둥록문화재 제103호 주보성인: 그리스도 왕 1927년 4월 4일 설립 1927년 5월 25일에 울산지역 최초의 성당으로 건립부산교구내에서는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며,13곳의 성지 및 천주교 사적지와 16곳의 공소가 있었던 영남지역 천주교 신앙의 출발지.석조2층 건물로서 울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이다. 파란색 지붕 두 곳 중에 오른쪽이 성당이고, 왼쪽은 유물전시관이다.     ▼유물전시관(옛 사제관) 옛 사제관은 본..

김영제와 김 아가다 묘(살티순교성지)-부산교구

김영제와 김 아가다 묘(살티순교성지)부산교구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산218-1  양반 가문의 김영제(베드로)는 9개월이나 감옥에 갇혀서 배교를 강요당하고 종지뼈가 으스러져 떨어져 나가는 극심한 고문과 문초를 당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혹독한 장독이 전신으로 퍼지고 상처 부위에는 항시 피고름이 흘러 한겨울에도 바지를 걷고 진물을 받아내야하는 고통 속에 살다가 결국 1875년 숨을 거두었다, 김영제의 동생 김아가다는 김영제와 함께 체포되었다가 도망쳐 나와 최양업 신부가 있는 죽림굴에 은신하여 최신부를 도왔다. 체포되었던 후유증으로 여러날 앓다가 선종하였다.(1860년)  왼쪽이 오빠 순교자 김영제(베드로)의 묘이고,오른쪽이 누이 동생 동정녀 김 아가다의 묘이다. 순교자 김영제(베드로) 묘소는동남..

살티공소/부산교구

올해(2023년)으로 155년의 역사를 지닌살  티  공  소부산교구 1868년 설립 관할본당: 언양성당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살티길 9 간월 공소가 무너지자 거기에 살았던 신자들이 더 깊은 안살티로 들어가 정착하다가 점차 박해가 뜸해지면서 논밭을 경작할 수 있는 살티로 옮겨 와 살티 교우촌을 이루었다. 증거자 김영제(1827~1876, 베드로)가 1876년 형장으로 인해 장독사(杖毒死)한 곳이며,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를 비롯하여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의 고장이기도 하다. 1868년에 설립된 살티 공소는 언양 지방의 간월 공소(1815~1860), 대재 공소(1840~1868)에 이어 설립된 공소로서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밀양군·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39m) 중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