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교구 성지 15

전주 전동천주교회 발상지

전주 전동성당 발상지 기념비 위치 주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276 이 곳은 프랑스외방전교회 소속이셨던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보두네(BAUDOUNT, 윤사물,尹沙勿)신부님께서 1889년 봄부터 1891년 6월 23일까지 현 전주전동성당 자리가 마련되기 전까지 주님의 사업을 행하셨던 전주본당(현, 전동성당)의 발상지다. 전동본당에서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의하나로 1991년 12월 8일에 전동성당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웜회에서 여기에 전동성당 발상지임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게된다.

두쎄 신부 거주지(터)-전주교구

두쎄 신부 거주지는 1883년 두쎄 신부가 고산 빼재(현 운주면 승치)에 거처를 정하고 있다가 고산 먹방이(현 운주면)에 부임하면서 충청도를 담당할 때 거주했던 곳이다. 여기에 거주하면서 거주지 바로 앞에 먹방이공소도 설립한다. 먹방이공소 안내판에서 두쎄 신부 거주지 터까지 약 120M 정도이다. 먹방이공소 안내판에서 주쎄 신부 거주지 안내 푯말이 보인다.

초남이성지-전주교구

'호남의 사도'유항검의 생가터와 윤지충 복자, 권상연 복자, 윤지헌 복자 묘가 있는 곳으로 호남 천주교 발상(1784년)지 초 남 이 성 지 전주교구 전북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 초남이 성지는 유항검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생가터이다. 유항검은 1784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내려와 가족들과 가솔들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김제, 금구, 고창, 영광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다. 가성직 제도 아래에서 신부로도 활동했지만, 가성직제의 부당함을 알고 난 후에는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만 둘 것을 요청했다. 그 후 동료들과 함께 성직자 영입운동을 함께했다. 1795년에는 주문모신부가 이곳에 내려와 미사를 집전하고 유항검과 교회의 여러 현안들을 논의했다. 유항검은 신유박해(1801) 때 체포..

천호성지-전주교구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 천 호 성 지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 천호성지는 병인박해(1866)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 요셉 등 네 명과 그해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가 묻혀있고, 그리고 1868년에 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순교자가 묻혀 있다. 아직도 종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천호산 자락에 묻혀있다. 천호는 기해박해(1839) 이후로 박해를 피해와 숨어살던 신자들이 이룬 유서깊은 교우촌이다. 또한 성지 인근에는 1845년 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미사굴과 1867년 블랑 신부가 처음으로 정주하여 사목한 전라도 최초의 사목지 어름골이..

치명자산성지-전주교구

유항검의 가족 7분이 묻힌 치명자산성지 전주교구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92 치명자산에는 신유박해(1801)때 순교한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그의 가족 6명이 합장되어 있다. 이 중에는 다블뤼 주교가 “한국 순교자들의 보석”이라고 칭송한 동정부부 순교자 이순이와 유중철도 포함되어 있다. 유항검 가족은 처음에 초남이 근처 바우배기에 매장 되었다가 1914년 전주성당(현 전동성당)의 보두네 신부가 유해를 모셔와 현재 자리에 모셨다. 보두네 신부가 해발 300여 미터의 산정에 순교자들을 모신 뜻은 순교자들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을 높이 기리고, 순교자들이 전주를 수호해 주기를 기원함이었다. 이후 1993년 유항검의 유해 확인을 위한 시굴 작업을 진행하여 유항검과 그 가족 6명 모두의 유해를 확인한 후 ..

여산순교성지-전주교구

하늘의 문 여산순교성지 전주교구 여산순교성지는 병인박해(1866)부터 무진박해(1868)에 이르기까지, 여산 주변의 고산,금산, 진산등의 천주교 신자들이 사법권을 가진 부사가 있는 진영이 있었던 여산으로 잡혀와 무참하게 처형당한 순교터다. 기록으로 남은 여산의 순교자들이 25명에 이르는데, 그 중 고산마을에서 잡혀온 신자들이 많았고, 특히 고산마을의 김성첨(토마스)의 가족은 3대에 걸처 6명이 순교하였다. 천호성지의 성인들 묘소 아래 무명 순교자 묘소가 있는데, 여산에서 순교하신 분들이 묻혀 있다. 교우들이 야음에 시신들을 자루에 담아 짊어지고 천호산에 가서 안장했다. 여산성지성당에서 출발하는 여산 진복 팔당 순례길을 따라 순례해본다 순례 순서는 「여산성지성당>감옥터(동헌)>백지사터>기금터> 장터>배다리..

전동성당-전주교구 성지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터에 세워진 전동성당 전주교구성지 1889년 설립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동성당은 1791년 12월 8일(신해박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참수되어 순교한 천주교 최초의 순교터이다. 1801년 10월 24일(신유박해)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동생 유관검, 윤지충의 동생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고, 이어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은 참수로 순교하였다. 1889년 전주본당이설립되고 초대로 보두네 신부가 부임했지만, 당시 전주에는신자가 한 명도 없어 처음에는 완주 소양 대승리에서부터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1891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고 그리고 1908년에 성당 건축을 시작해서 23년만에 공사가 완성된다. 전동성당은 ..

숲정이성지-전주교구

순교자들의 피의 꽃으로 피어난 숲정이성지 전주교구 전라북도 기념물 제71호 전주시 덕진구 공북로 19 조선시대에 군사훈련 지휘본부인 장대(將臺)가 있던 곳이며, 신앙을 끝까지 증언하는 천주교인들에게 참수형을 집행한 형장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곳은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 혹은 ‘숲정이‘라고도 했다. 순교자의 피가 이 땅을 처음 적신 것은 1801년(신유박해)이었다. 그해 12월 28일 전라도의 첫 사도(使徒)인 유항검의 가족 중 그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맏며느리 이순이(루갈다,20세), 조카 유중성(마태오) 등이 순교했다. 1839년(기해박해) 5월 29일에는 13년 동안 옥고를 치른 신태보(베드로,70세), 이태권(베드로, 58세), 이일언(욥, 73세), 정태봉(바오로, 44세), 김대..

김제순교성지-전주교구

복자 한정흠의 순교지 김제순교성지 전주교구 순교자 한정흠(스타니슬라오 1756-1801) 순교자 한정흠(스타니슬라오)은 175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전주 초남이의 먼친척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집에 거주하면서 유항검의 자녀들을 가르쳤고, 유항검을 통하여 천주교에 입문하였다. 1795년 6월,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천주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1801년 3월 신유박해 중에 체포되어 전라감영에 수감되었다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1801년 8월 21일, 형조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1801년 8월 26일 45세의 일기로 김제 장터에서 참수되었다. 2014년 8월 16일 방한하신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하여 윤지충(바오로)를 포함한 123위 순교자와 함께 시복되었다. 성지 순례지 복자 한정흠(..

초록바위-전주교구 성지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수장당한 순교터 초 록 바 위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1-9 주변 초록바위는 병인박해(1886년)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의 큰아들 남명희와, 남종삼과 함께 순교한 홍봉주의 아들을 교수형으로 죽인 후 전주천으로 밀어넣어 수장시킨 곳이다. 남종삼이 처형되고 난 후 그의 부친 남상교와 큰아들 남명희는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였던 남명희는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전주 감여으로 이송된 남명희는 국법에 따라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을 연기하고 옥에 가두어 두었다. 그후 이듬해에 이곳 전주천 옆의 초록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죽인 다음 그 시신을 전주천에 수장 시켰다 남명희 집 안은 3대가 순교의 영광을 입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