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사도'유항검의 생가터와
윤지충 복자, 권상연 복자, 윤지헌 복자 묘가 있는 곳으로
호남 천주교 발상(1784년)지
초 남 이 성 지
전주교구
전북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
초남이 성지는 유항검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생가터이다.
유항검은 1784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내려와 가족들과 가솔들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김제, 금구, 고창, 영광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다.
가성직 제도 아래에서 신부로도 활동했지만,
가성직제의 부당함을 알고 난 후에는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만 둘 것을 요청했다.
그 후 동료들과 함께 성직자 영입운동을 함께했다.
1795년에는 주문모신부가 이곳에 내려와 미사를 집전하고
유항검과 교회의 여러 현안들을 논의했다.
유항검은 신유박해(1801) 때 체포되었고
‘대박청래운동(大舶請來運動)’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어 대역무도죄를 선고받아
그해 9월 17일 풍남문 밖(전동성당)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순교하거나 유배되었고 그의 집은 파가저택破家瀦宅 되었다.
또 이곳은 유중철과 이순이가 동정부부의 삶을 4년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살던 유항검의 가족들 중 7명이 신유박해 때 순교했는데
이들의 시신은 처음에 바우배기에 모셨다가 1914년에 치명자산으로 이장했다.
(전주교구홈페이지에서 가져옴)
원래 이 일대가 모두 유항검이 소유한 땅이였고,
유항검은 높은 덕망과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가문의 아들이였다.
생가터에 들어서면 왼쪽 한옥이 요셉성당이고
가운데에 못이 있다
십자가 뒤에 유항검 생가터라는 안내석이 있다.
못의 앞이 아닌 현재 표시석이 있는 바로 그자리가 생가가 있었던 터랍니다.
유항검은 1801년 10월 24일(음력 9월 17일) 전주 남문 밖에서
유관검, 윤지헌(프란치스코, 37세)과 함께 참수치명 받았다.
조정은 유항검의 머리를 풍남문 누각에 매달았다.
또한 그의 생가를 파가저택(破家瀦宅)하고, 그 많던 재산도 몰수하였다.
*파가저택:예전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의 집을 헐어 없애고 그 터에 못을 만드는 형벌을 이르던 말
또 이곳은 유중철과 이순이가 동정부부의 삶을 4년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교리당 敎理堂
교리당은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동생 유관검이 박해시대에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논한 장소이다.김제의 순교복자 한정음 스타니슬라오와 전주의 순교복자 김천애 안드레아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유항검으로부터 교리를 받아 입교한 것으로 보아 이곳 교리당은 당시 신앙 전습의 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곳 교리당 안에는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1759-1791)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1751-1791), 신유박해 순교자인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1764-1801)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이종사촌 동생인 윤지충과 외종사촌 형인 권상연이 순교한 이후 이들의 유해를 자신의 땅인 바우배기에 안장하였고, 함께 묻은 백자사발지석에 이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였다. 이들이 순교한 지 230년이 지난 2021년 3월 11일, 바우배기 묘소 정비 중 이들의 유해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항검 나눔의 집
초남이성지에서는 유항검 생가터의 성 요셉 성당이나
아니면 교리당에 있는 유항검 나눔의 집에서 미사를 참례할 수 있다.
순레시에 미사참례를 하고자 할 때에는 미사 장소를 확인해야 한다.
▼야외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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