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교구 성지 9

신앙고백비-상주 청리/안동교구

「자기의 믿음을 증거 하기 위해 세운 상주 청리 신앙고백비 안동교구성지 경북 상주시 청리면 삼괴리 361 청리면 삼괴 2리 마을에는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김해 김씨 집안의 김복운(金福云)의 아들 4형제 중에 장남인 삼륙(三陸)과 차남인 삼록(三錄)등 형제들이 열심히 천주교를 믿었다. 그러나 병인박해(1866)가 일어나자 다른 형제들은 믿음을 중단해버렸고, 둘째인 삼록(도미니코 1843~1935)만이 끝까지 천주교를 믿었다. 박해 중에는 여러 곳으로 피신을 다니다가 1886년 한불수호조약으로 공식적인 박해가 끝나고 어느 정도 신앙의 자유가 허용될 무렵인 1900년경 그와 그 집안의 문중들이 살고 있던 석단산(石壇山) 아래의 현재 청리면 삼괴 2리 안 골짜기의 쌍 바위 중 오른쪽 큰 바위 위에 자기의 ..

상주옥터순교성지/안동교구

안동교구 첫 번째 복자 박상근 마티아 순교 성지 상주옥터순교성지 안동교구 경북 상주시 남문2길 89-15 (성동동 633-2번지) 복자 박상근 마티아(1837-1867)는 문경의 아전으로 칼레 신부의 피신을 헌신적으로 도우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상주 감옥에서 순교하게 된다. 1867년 1월 상주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그의 묘는 문경 마원성지에 있다. 구한말 상주진영의 옥 터는 현재 상주시 성동동 남문시장 옛 소전걸(현, 상주 청과물시장)이다. 박해시대 때, 이곳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이 왕산 남쪽 아래에 있는 관아로 끌려 나가 문초를 받았는데, 심문을 받는 중에 배교하거나 순교하는 신자들도 많았다. 당시 형장은 옥 터 바로 옆인 성동동의 소전〈현 대구여인숙 부근〉과 서문 ..

여우목성지/안동교구

이윤일 요한 성인과 서치보 요셉 가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교우촌 여우목성지 안동교구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여우목에 있다. 이곳에 처음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27년 정해박해 후부터 1839년 기해박해 사이에 순교자 박경화(바오로), 순교자 박사의(안드레아)의 아들인 박 요한이 경상감영에서 석방된 후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또한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이윤일(요한) 성인이 박해를 피해 상주 갈골로 이사를 왔다가 다시 당시 외교인들만 살고 있는 여우목으로 이사를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후에 서치보(요셉)은 이곳에서 1841년에 세상을 떠났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박 요한과 일부 신자들은 황간 상촌으로 가서 충주 포교에게 잡혀 충주 혹은 서울에서 순교하고, 성 이윤일과 이곳의 많은 ..

여우목교우촌/안동교구

이윤일 요한 성인과 서치보 요셉 가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교우촌 여우목 교우촌 안동교구 성지 여우목[狐項里]에 교우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로 성 이윤일(요한)과 서치보(요셉) 가정이 상주 갈골과 충북 청풍에서 이곳으로 피난 옴으로써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순교자 박경화(바오로 ✝1827)의 아들 박사의(안드레아) 가정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으며 이후 30여 명을 입교시킴으로써 큰 교우촌을 만들었다. 병인박해(1866년)가 시작되자 이곳 교우들도 문경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문경관아로 끌려갔으며 이윤일 성인은 교회의 두목이라하여 한실공소 회장님과 함께 대구로 이송되어 1867년1월21일 대구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 순교하였다. 그리고 병인박해를 피해 이곳을 떠났던 일부 신자들은(박..

홍베로니카 치명터/안동교구

홍베로니카 치명터 안동교구 병인박해 때 이윤일 성인 등 30여명의 신자들이 체포되어 갈 때의 일이다. 중평리 여우목 밑의 마을(현재 개신교 교회가 들어서 있는 곳)에 살던 베로니카란 80대 할머니도 함께 포졸들한테 붙잡혀 가게 됐다. 고령의 베로니카 할머니는 다리를 절면서 잘 걷지를 못했다. 자연히 끌려가는 대열에서 자꾸 처지자 포졸들이 고함을 지르며 나무랐다. “왜 할머니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놓아줄텐데 절뚝거리며 따라 가느냐?”고.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베로니카 할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포졸들에게 되물었다. “살아계신 천주님을 어떻게 계시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느냐?”며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증거했다. 노쇠한 베로니카 할머니와 포승줄을 끌어당기는 포졸들과 실랑이가 세 번째..

마원성지/안동교구

「장한 믿음 ⦁ 숭고한 사랑 ⦁ 눈물겨운 우정」과 복자 박상근 마티아가 잠들어 있는 곳 마원성지 안동교구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마원 1리 600-1 칼레 신부와 순교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 장한 믿음 ⦁ 숭고한 사랑 ⦁ 눈물겨운 우정」을 상징 왼쪽이 칼레 신부이고 오른쪽이 복자 박상근 마티아이다. 사제와 평신도간의 우정 칼레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낸 서한에는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와의 우정 어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박상근 마티아가 1866년 3월 중순경 좁쌀을 사기 위해 지금의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의 한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칼레 신부를 만나 문경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서 숨겨드렸으나, 3일째 되는 날, 칼레 신부가 이웃 주민에게 들키자 급히 한실로 되돌아가기 위해 함께 산길을 오르던..

진안리성지/안동교구

최양업(토마스) 신부님 선종지 진안리성지 안동교구 선종: 1861년 6월 15일, 문경읍 진안리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1859년 말부터 1860년까지는 경신박해를 맞아 경남 언양의 간월산 동굴에서 3개월간 피신을 하였고, 1860년 8월 박해가 끝난 후, 밀린 사목방문활동을 재개하였다. 1861년 6월에 한양에 있는 베르뇌 주교에게 사목 보고를 하려가다가 문경새재와 이화령 고개의 갈림길인 문경읍 진안리의 오리터 주막집에서 약주 몇 잔과 황육(쇠고기)을 먹고 크게 병을 얻어 이씨(李氏) 약국집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과로로 몸이 쇠약한 데다 장티푸스의 합병증으로 기어이 6월 15일 40세의 나이로 선종 하였다.. 선종하기 8,9시간 전 그곳에서 170~180리 떨어진 배론신학교의 푸르티에( J.A.C.Po..

우곡성지/안동교구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수덕자(修德者) 농은 홍유한 선생과 그 후손 순교자들의 안식처 우곡성지 안동교구 경북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한국 최초의 수덕자로서 '칠극(七克)'의 가르침을 따라 천주교 수계 생활을 28년 동안 이어 온 농은 홍유한 선생과 선생의 후손으로 순교한 순교자 13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16세 때부터 유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 하다가 1750년경부터 성호 이익 선생의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할 때,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깨달은 바가 남달리 커서 1757년경에는 서울의 살림을 정리하고 충청남도 예산으로 내려가서 '칠극'에 따라 18년 동안 혼자 천주교 수계 생활을 하였다. 1775년에 경상도 순흥 구구리로 와서 10년 동안 수..

홍유한 고택지/안동교구 성지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수덕자(修德者) 농은 홍유한 고택지 안동교구 성지 경북 영주시 단산면 구구로 239-6 세례를 받지 않으셨지만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1784년 보다 30여년 전에 천주교 신앙 샐활을 처음 실천하셨던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농은 홍유한 선생의 유택이다. 천주교를 단순히 신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천지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종교적 요소를 가지고 대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첫 인물로 꼽힌다. 서울에서 태어나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던중 1750년 경부터 서학인 등을 통해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천주교 수계 생활을 철저히 하기 위해 이곳 구구리로 거처를 옮겨서 사셨던 곳이다. 1785년 1월 30일 (음) 60세로 세상을 떠나시자 그해 4월 19일 우곡에 안장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