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교구 공소 47

산이리공소/수원교구

산이리공소 수원교구 곤지암성당 관할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경충대로 895-30 (산이리 76-2) 곤지암성당이 2000년에 설립되면서 산이리공소는 폐쇄된다. 산이리공소에서 곤지암성당까지 약 4km 로 차로 10분 이내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지금은 개인 사업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이1리 마을회관과 산이리공소 경계 담 밑에 사각형의 안내석이 하나 있다. 안내석에는 우리 신앙선조께서 박해를 피해 여기에서 독을 만들던 곳임을 나타내고 있다. 독 점 소재지: 초월면 산이리 이곳은 조선 정조때 천주교인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살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독(항아리)을 만들었던 곳임.

퉁점골공소(터)/수원교구

퉁점골공소(터) 수원교구 관할본당: 능평 성당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35번지 퉁점골은 천주교 병인박해(1866~1873)때 독실한 교우 심흥섭(요셉)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고 동료들을 모아 이룩한 교우촌이다. 교우들은 생계를 위해 퉁쇠(거친 놋쇠)를 만들어 출하했는데, 이후 퉁쇠를 만들던 골짜기라 하여 ‘퉁점골’로 동네 이름이 명명되었다. 1882년 서울 명동성당 관할이었고, 왕림본당 구역으로 재편되어 1900년 신앙공동체를 발전시켜 ‘퉁점공소’가 되었다. 한때는 300여명 교우들이 판공을 했고, 이 땅에 신앙의 꽃을 피우기 위해 헌신한 신앙 선조들이 오가던 우리나라 남쪽 지방 선교의 다리 역할을 했던 교우촌이다. 지금도 공소를 지키고 있는 유마르타 자매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매님 나이 17..

도전리(원심이)공소/수원교구

올해( 2021년)로 설립 13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도전리(원심이)공소 수원교구 관할 본당: 북여주 성당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원심동1길 109 (도전리 421-4번지) 공소의 뿌리는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이는 정 안토니오로, 아내 임 카타리나가 병인박해로 순교하자, 원심이(도전리의 옛 이름)로 피신한다. 정 안토니오와 송선일이 원심이에 정착하고 불과 4-5년 후 충주 배일곡에 살던 남원 양씨 곡산공파 양재형이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오며 교우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우도(Oudot, Paul, 오보록, 1865-1913)신부가 1890년 원심이에서 신자들과 생활하면서 경당을 짓고 한국의 언어와 풍습을 익힌 후 1891년 10월, 전라도로 이임..

고초골공소와 피정의 집/수원교구

고 초 골 공 소 수원교구 관할 본당: 원삼 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708호 공소란 주임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본당보다 작은 신자들의 모임 장소이다. 고초골 공소는 천주교 수원 교구 내 한옥 공소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고초골은 1820년경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중에 모여들면서 생긴 교우촌이다. 그런데 고종 3년(1866) 병인박해로 이곳에 숨어 살던 천주교인들은 붙잡혀 순교하였고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고종 23년(1886) 조선과 프랑스의 ‘조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에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자 이곳에 다시 천주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기도 및 집회 장소로 사용할 공소를 마련하였다. 현재 공소 건물은 1891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인근 문촌리의 안기선 전 천안군수 댁에서 누에를..

나래리공소/수원교구

나래리공소 수원교구 관할 본당: 장호원 성당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나래천로509번길 152-4 (나래리650번지) 공소를 마련하기 전에는 10여km 떨어진 감곡성당까지 걸어가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1950년대에 교우촌 형성 1960년도에 이르러, 새로운 공소 건물을 짓기로 결심해서 1975년 완공 현재 공소 건물은 1998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금호리공소/수원교구

금호리공소 수원교구 관할 본당: 장호원 성당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장여로189번길 28-12 (노탑리 345번지) 1977년 강당 완공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루었고 옹기를 구워서 생활하고, 옹기가마안에서 신앙생활을 몰래하기 하기도 했으며, 공소가 생기기 전까지는 약 3~4km 떨어진 감곡 성당으로 걸어서 미사참례를 했다 합니다. 감곡성당 가기전에 있는 청미천에 섭다리를 만들어서는 그리로 건너서 성당에 갔다고 합니다.(금호리교우의 말씀) 1977년 노탑2리에 '금호리 사랑의 집'을 공소 강당으로 건립. 현 공소는 1993년에 봉헌식을 하였다.(외침 2021. 4월호) 현재는 판공 때에만 사용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