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공소 119

이사리공소/광주대교구

이사리공소 광주대교구 1960년 4월 16일 설립 관할본당: 한산성당 이사리공소가 설립 시에는 장항성당 소속이었으며 한산공소가 한산성당으로 승격, 설립되면서 지금은 한산성당 소속이 되었다. 충남 서천군 마산면 삼일로88번길 99-16 (이사리 164) 1959년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하던 이충구(요셉) 형제가 이사리에 정착하여 전교하던 중 1960년 4월 16일 장항성당 관할 이사리공소가 설립되었다. 1959년 11월 24일 장항본당에 라는 2통의 문서가 전달되었는데 시초면 태성리 성결교회 이모 장로 외 30명의 이름으로 천주교로 개종의 뜻을 표명하고 교회 부동산까지 이전하기로 하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들은 1961년 장항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당시 이 카타리나, 박 아녜스 교리교사가 파견되어 교리를 ..

장구리공소/대전교구

박해 이후 형성된 옹기마을 교우촌 장구리공소 대전교구 1911년 설립 관할본당: 서천성당 장구리(송동)는 박해 이후 형성된 교우촌으로 1882년(신자수 69명) 퀴클리에 신부의 사목담당 공소였다. 1899년 뮈텔 주교가 방문할 정도로 큰 공소였으나 송동공소는 쇠락하고, 장구리 옹기마을을 중심으로 전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1911년 장구리에 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예절은 회장집에서 지내다가 8.15해방 이후 전태용 회장 재임 시기 중 당정리 약방집에 공소를 마련하였고 이어서 이집을 매입하였다. 현재의 공소는 이상의(호노라도) 회장 재임 시기인 1976년에 건축되었다. 1993년경 공소는 폐지되고 건물은 비어있다.(대전주보 제2673호) 충남 서천군 종천면 충서로263번길 27-40 (장구리 655-143)

묘원리공소/대전교구

묘원리공소 대전교구 관할본당: 금사리성당 1955년 설립 묘원리공소는 1951년 금사리 출신 김종갑 발라바가 이주하여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전교되고, 1955년 최제구 신부의 방문으로 공소가 시작되었다. 1963년 약방과 주택으로 사용하던 목조 가옥을 개조하여 강당과 공소방을 만들었으며 이때 신입 교우들이 증가하였다. 한때 인근에 위치한 천보리초등학교 교사 증축 기간(2년)에 학생들의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61년 교우수는 89명에 이르렀으나 인구의 감소로 2000년경 공소가 폐지되고 현재는 1~2명 교우가 거주하고 있다. (대전교구 제2625호에서 발췌) 충남 부여군 내산면 묘원리 279

두북리공소/대전교구

두북리공소 대전교구 관할본당: 서천성당 두북리공소는 1895년 퀴클리에 신부의 담당 공소였으며 신자수는 9명이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 집성촌인 노씨 가문을 중심으로 전교와 건축이 이루어졌고 공소 회장도 노씨 가문에서 맡았다. 1958년 첫 번째 공소를 건축하였고, 1960년에는 전교 수녀가 파견되어 노상래 회장댁에서 기거하며 활동하였다. 현재의 공소건물은 1973년에 건축되었는데 노명래 라파엘이 부지를 희사하고 그의 사촌들이 건축비용을 부담하였다. 공소는 2000년경 중지되었고 공동체는 본당구역에 편입되었다. 건물은 개인에게 임대되어 싱크대 제작소로 활용되고 있다.(대전교구 제2668호) 충남 서천군 기산면 충절로 596-8 (기산면 두북리 3-1)

분천리공소/대전교구

분천리공소 대전교구 관할본당: 예산 산성리성당 분천리공소는 6.25 한국전쟁 직후 전교되면서 예산성당 관할로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삽교성당을 거쳐 예산산성리본당(1988년)설립으로 관할이 변경되었다.. 충남 예산군 분천리 285-44 2001년 본당 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공소건물은 1963년 9월 11일 준공되었다 십자가 아래에 준공연도가 뚜렷이 보인다. 1980년대 중반 공소예절이 중지되면서 건물은 비워있다.

봉암리공소/대전교구

봉암리공소 대전교구 관할본당: 세종도원성당 봉암리공소는 1957년 신자수 68명으로 설립되었다. 공소 초기에는 초대 윤병주 베드로 회장집에서 공소예절을 했다. 첫 공소 건물은 1967년 건립되어 원 아드리아노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되었다. 부지는 윤 회장이 봉헌하고 건축비용은 본당지원과 공소 교우들의 봉헌으로 이루어졌다. 대중교통의 발달로 1995년 공소가 폐지되고, 공소건물은 누수와 균열 등의 노후화로 2012년에 철거되었다. 현재는 새 건물을 신축하여 공동체 모임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대전주보 제2678호 발췌) 윤영중(필립보, 대전교구 성소국) 신부가 여기 봉암리공소(당시 본당은 조치원성당) 출신으로 이곳 공소회장의 아들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중뜸길 22-10 (봉암리 427-8)

계촌리공소/대전교구

계촌리공소 대전교구 관할본당: 신례원성당 1891년 계촌공소(진말,진마을)는 퀴클리에 신부의 사목담당 지역으로 45명의 신자가 있었다. 이곳의 신앙은 여사울의 이존창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960년대 담자 공사 때 성물이 발굴되어 절두산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보관 중이기고 하다. 첫 공소는 한옥조 형태의 건물이었고, 이후 1965년 현 위치로 목구조 강당을 이전 신축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에 건립되었다. 2005년경부터 본당 구역으로 통합되었고, 2022년 현재 35세대 중 10여명이 신례원성당으로 전례에 참여하고 있다. (대전주보 제2687호 발췌) 충남 예산군 신암면 계촌2길 62 (계촌리 263-2번지)

구만리공소/대전교구

구만리공소 대전교구 관할본당: 고덕성당 구만리에 전교가 된 것은 1951년경 이전석 파비아노가 운산으로부터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1955년 이성빈 아오스딩(이전석의 부친)이 이주해 와서 초대회장으로 추대되고 그의 집에서 공소집회를 가졌다. 현재의 공소건물은 본당지원과 공소 교우들의 봉헌으로 1957년 기공하여 1958년 준공되었다. 1963년에는 은인의 도움으로 목조 종탑을 성치하였으나 지금은 철거되었고, 1983년에는 부속실을 증축하였다. 공소는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지다가 집회가 중지되면서 건물을 사용하지 않아 여러 부위에서 훼손이 발생하고 있다. 1987년에 신자수는 52가구 148명에 달하였으나 현재 30여세대 20여 명이 2021년 신설된 고덕성당으로 전례에 참례하고 있다.(대전주..

창용공소/대전교구

창용공소 대전교구 1884년 창용리공소는 두세 신부의 사목 담당 공소였다 당시에는 41명의 신자가 있었다. 당시 초대 장두진 회장의 희생에 힘입어 마을에 전교가 되었다. 1956년 목조 공소를 건축하였고, 현재의 공소는 1964년에 건축한 것이다. 공소활동은 없으며, 관할본당 둔포성당으로 미사참례를 하고 있다. 관할본당: 둔포성당 공새리성당 소속으로 있다가 1980년 둔포성당이 공세리성당에서 분가, 설립하면서 둔포성당 관할이 됨.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호로638번길 38 전임 공소회장의 말씀으로는 우리나라 초창기 천주교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공소로 교우촌이 형성된 곳의 공소로 아주 오래전에는 일반 가정집에서 미사참례를 하였다고 합니다. 현 공소 강당은 1964년 7월 9일 준공. 이 공소 준공 이전에..

마산공소-아산/대전교구

아산 마산공소 대전교구 1958년 설립 관할본당: 둔포성당 마산공소는 1949년 창용리4구(신봉리 마산)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초대 김기영 율리아노 회장집과 2대 김기우 요셉 회장집에서 공소예절을 가졌다. 당시 신자수는 41명이었다. 공소 건물은 1959년 12월 8일 공세리본당 세라장 신부 재임 때 건축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공세리성당 소속이였다가 1980년 둔포성당이 공세리성당에서 분가, 설립하면서 둔포성당으로 이관. 레지오회합은 매주 공소 강당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반모임도 강당에서 가지며, 판공시에도 공소 강당에서 한답니다. (공소회장의 말씀)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호로746번길 55-5 종탑이 있는 공소 건물 앞부분은 1964년에 달아내는 공사를 해서 1965년 3월에 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