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공소 119

수암공소-서천/대전교구

수암공소대전교구 1968년 설립 관할 본당: 서천성당 신농공소가 있는 신농리와 이웃하고,작은재 줄무덤 성지를 가는 길목에 위치공소회장의 말씀으로는젊은 사람은 없고, 연료하신 분만 몇 분 계시는 상항이여서오래전 부터 공소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며,주일 마다 관할본당으로 미사 참례하려 간다고 합니다. 수암리는 박해 시기와 그 이후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던 공소로 독뫼공소(1884년,53명)와 독뫼제2공소(1888년,59명)는 두세 신부의 사목 담당이었다. 1968년 신농리공소에서 분리,설립되어 공소 회장집에서 20여 명이 모여 공소예절을 거행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87년 서천성당 백승옥 신부 재임 시 임씨 종중 토지에 경량철골조로 건축되었다.2000년경 신자수 감소로 공소는 폐지되고 건물은 방치 상태다..

은곡공소/대전교구

은곡공소대전교구 관할본당: 홍산성당 공소로 활동이 중지된 상태로현재 농사짓는 교우분이 임대해서 1층에서 살고있고2층에는 강당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충남 서천군 문산면 서문로 1277-11 지금의 공소 건물이 1988년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설립년도나 1988년 그 이전의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 아래의 자료들은 1층에 살고 있는 교우분들이코로나에 걸려서 자가격리 중이였고,1층을 통해서 2층으로 올라가야 하 는 구조여서직접 2층 강당에 가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교우 분에게 부탁해서 얻은 것들이다.

용당리(고당)공소/대전교구

용당리(고당)공소대전교구 1891년 설립, 구룡면 최초 공소아래의 내용은 갈마동성당 2021년 5월 2일 주보에서 발췌한 것이다용당리(고당)공소는1891년 퀴를리에 신부의 사목담당 지역으로 38명의 신자가 있었다.당시 교우들은 용당리에 본당 설립 계획을 펼쳤으나공베르 신부는 1901년 금사리에 본당을 설립하였다.1892년 경 공소에 학교가 설립되어 강 마지아 교가가 활동하였다.공소예절은 1979년 현 공소를 건축하기 전까지는 회장집에서 이루어졌다.1961년 교우수는 104명에 이르렸으나 인구 감소로현재(2021년 5월)는 30여명의 교우가 정기적인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관할 본당: 금사리성당 충남 부여군 구룡면 용당로2번길 39

뒹굴공소(터)/대전교구

뒹굴공소(터)대전교구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몰수된 금사리성당의 사제였던몰리마르 신부가 잠시 피난왔던 장소가 뒹굴공소이다. 충남 부여군 내산면 삽티로 649-36 (금지리 104번지)배롱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에 건물이 있었고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배롱나무 아래의 석축이 공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배롱나무 뒷 편에 서있는 사철나무 밑에도 석축이 보인다. 뒹굴공소가 허무러져서 철거되기 전의 모습분홍색 지붕이 유일한 뒹굴마을의 민가로 한 채만이 현재 있다. 뒹굴마으로 들어서면 민가 뒤의 대나무 숲 바로 아래에 뒹굴공소 터가 있다.

만수리공소/대전교구

만수리공소대전교구 설립년도를 확실하게 알 수 없고,약 60년 전에 설립된 것으로 보고있다. 관할본당; 금사리성당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로 243 공소 앞에 있는 고목나무 두 그루는 공소 역사와 같이 60년 정도의 수령을 가졌다고 합니다.두 나무 사이에 성모자상이 보입니다. 십자고상 바로 아래 있는 제대는 제2차 바디칸  공의회 이전에 사용한 것이고,보로 덮어논 제대는 그 이후에 사용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제대. 제2차 바디칸 공의회 이전에 사용한 형태의 제대로이런 제대를 사용할 시에는  신부님은 신자를 등진 상태로 미사를 하게된다.십자고상 아래의 직사각형 모양의 함은 감실이다.지금까지  제단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성체를 모실 때 신자들이 장괴틀로 와서 장괴를 하면 신부님이 직접 입으로 성체를 ..

도화담공소/대전교구

박해시대 흔적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공소도화담공소대전교구 1910년 설립설립 당시에는 금사리성당 관할이였고지금은 보령 동대동성당 관할이다. 충남 보령시 미산면 판미로 1601 이전의 공소 자리가 2017년에 국도 확포장 공사로 편입되면서현재의 위치로 3년 전에 신축하여 이전구 공소에서 걸어서 현 공소까지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2019년 3월 30일 입당 미사가 있었다.

누동공소/대전교구

누동공소대전교구 관할 본당: 안면도성당 조선박해시대부터 공동체가 형성된 곳으로,1891년 경 퀴클리에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기 시작.당시 신자수가 28명이었다.1927년경 강덕원(베드로)회장이 사비를 들여 지역어린들의 문맹퇴치를 위한 강습소를 개소.1962년 한식 목구조의 첫 번째 공소를 건축,1981년 두 번째 공소를 건축하여 황민성주교 집전으로 축복식 가졌고,1995년 이후 쇠락하였다가2016년 대수리를 하고  2017년부터 정규형(요셉) 평신도 선교사가 퍄견됐다.2022년 현재 월3회 주일미사가 있으며23세대 40명의 신자 중에 25묭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출처: ①안면도성당 카페,   새로쓰는 홍주천주교회사/조현옥 글②대전주보 2022년 9월 18일) 충남 태안군 고남면 누동로  70-7 (누동..

대곡공소/대전교구

대곡공소대전교구 1893년 설립 박해 시대 신자들이 해미로 압송될 때 넘어온 한티 고개 해미 쪽 공소.한티 고개는 한국 천주교 순교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다. 그 옛날 천주교 신앙의 전파로였고, 박해 시대 청양, 대흥, 덕산, 홍산, 예산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될 때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굴총 사건 때 왕래한 통로였으며, 순교의 길이요, 교우촌 재건의 길에 세워진 공소로 여러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마을이다.한티 마을은 비록 1893년에서야 합덕 본당의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에 의해 정식 공소로 설정되었지만, 교우촌은 이미 그 이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현지 교우들의 구전에 의하면 적어..

동성리공소/대전교구

동성리공소대전교구 1940년 설립지금은 폐쇄된지 오래된 공소이다.백용덕(그레고리오)가 자신의 집에 동성리공소를 차렸고,1998년에 동성리공소와 갈산공소가 합병된다.지금은 갈산공소에서 공소예절과 미사참례를 하거나본당으로도 다니고 한답니다.  동성리공소터 주소: 충남 홍성군 갈산면 동성리 배용덕 그레고리오 공소 회장으로 있으면서공소로 제공했던 배회장의 집은 허물고약 20여년 전 그 자리에 새로 건축한 것이 지금의 건물이며,현재 백회장의 후손이 살고 있다.(갈산토기의 자매님 말씀) 동성리공소 옛 터 옆에 갈산토기가 보인다.갈산토기의 자매님 말씀으로는과거에 토기 공장이 많았고, 자기의 선조들도 신앙 박해를 피해서 이리로 왔고,,그때부터 지금까지 여기서 신앙 후손으로 옹기를 구우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