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공소 119

금학공소/대전교구

2021년 현재 140년의 역사를 가진 공소.금학공소대전교구 설립년: 1881년 관할본당: 서산 예천동 성당 병인박해를 피하여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온 신자들이 거주하면서 교우촌을 형성했다.1881년 두세 신부가 공소를 설립했다. 1917년  서산 지역 첫 본당이 되었다가1920년 본당이 상홍리로 이전하는 관계로 다시 공소로 되기도 하였다.(가톨릭평화신문 2020. 09. 27)현재의 공소는 판공 미사와 공동체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충남 서산시 팔봉면 금학소길이길 158-20

노송공소/대전교구

노송공소대전교구 설립년: 1909년 관할 본당: 조치원 성당 노송공소는1887년 천주교가 전래되어 이루어진 교우촌1901년 배영호 안드레아와  김동면 레오가 세례 받아 첫 신자 탄생. 1909년 노산리(노미리)로 불리는 마을에 배영호(안드레아) 초대 회장을 중심으로 공소(신자수 8명)가 설립되어 루블레 신부가 방문하였다. 1977년 사도의 모후 Pr. 창단1984년 남성 치명자의 모후 Pr. 창단2004년  파티마의 모후 Pr. 창단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웅골길 27-3

작은재공소(터)/대전교구

작은재공소(터)대전교구 충남 서천군 판교면 산 11지번으로 찾기가 불편할 경우독뫼공소(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564번지)에서 출발해서 0.9km 지점의작은재줄무덤을 경유해서 산아래로 1km내려가면작은재공소터를 알리는 안내석을 만날 수 있다. 작은재공소(터)조선후기 천주교 대 박해가 있을 때에박해를 피해 내려온 내포지역, 서울,경기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어 살게 된 곳.1884년 만덕공소로 설립되어 마을이 이주됨. 작은재 순교자김  펠릭스(1868.10),        임  바오로(1866.09),       박  시몬(1868.05)

독뫼공소(터)/대전교구

독뫼공소터대전교구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564번지(참고로 공소터를 찾기에 편한 주소로 독뫼공소 터 안내석 앞의 건물 도로명주소는서천군 문산면 판문로 624번길 153)  독뫼공소 터를 알리는 안내석안내석과 성모동산 사이의 길로 올라가면작은재 줄무덤 성지와 작은재공소터로 갈 수 있다. 안내석에 있는 글을 옮겨 적어 보았다. 독뫼공소(양지뜸)교우촌 독뫼는 조선후기 천주교 대 박해가 있을 때에박해를 피해 내려온 서울.경기지역, 내포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독뫼(음지뜸)에서 옹기굴과 숯가마를 이용하여 첨례를 지냈고,1899년  11월  뮈텔 주교의 사목방문이 있었다.              이 곳은 마을로 내려온 공소로 양지뜸에서 공소가 이루어져 왔다.   독뫼의 순교자이 암브로시오..

부사리공소/대전교구

부사리공소대전교구 1960년대 설립 서면성당 관할 충남 서천군 부원길 350번길 44-2 부사리에 천주교가 전교된 것은 1910년경이며,6.25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초대 공소회장인 조용환(바오로)회장집에서공소예절이 있었고 신자수는 30-40명이 되었다1960년대 초 장항성당에서 구호물자를 배급하면서신자들이 많이 늘어 나면서 공소가 생겼다고 함.현재의 공소는 1986년에 건축되었다공소 3대 회장을 역임하신 마카리오 형제님의 얘기로는서면성당이 설립(2011년) 되면서 부터는공소예절을 하지 않고 모두 차로 5분 거리의 서면본당에서 미사참례를 한답니다.  공소 건물이 생기기 전에는 전 회장님의 사랑방에서 공소예절을 했고,현재 공소가 있는 마을에 9명의 교우들이구역 반모임을 할 때 정도로 공소를 활용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