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믿음 ⦁ 숭고한 사랑 ⦁ 눈물겨운 우정」과
복자 박상근 마티아가 잠들어 있는 곳
마원성지
안동교구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마원 1리 600-1
칼레 신부와 순교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 장한 믿음 ⦁ 숭고한 사랑 ⦁ 눈물겨운 우정」을 상징
왼쪽이 칼레 신부이고 오른쪽이 복자 박상근 마티아이다.
사제와 평신도간의 우정
칼레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낸 서한에는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와의 우정 어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박상근 마티아가 1866년 3월 중순경 좁쌀을 사기 위해 지금의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의 한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칼레 신부를 만나 문경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서 숨겨드렸으나,
3일째 되는 날, 칼레 신부가 이웃 주민에게 들키자 급히 한실로 되돌아가기 위해 함께 산길을 오르던 중의 이야기로,
「 칼레 신부는 허기가 지고 지쳐 도저히 동행할 수 없는 마티아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그러자 마티아는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한실 뒷산까지 가려면 이제 20리 정도 남은 것 같소. 나 혼자서도 거기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오. 마티아는 너무 지쳤으니 이 근처 마을로 내려가서 먹을 것을 얻도록 하시오.”
신부님! 제가 신부님을 떠나다니요? 혹시 한실도 포졸들이 습격하여 폐허가 되었다면 신부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은실할 곳이 없지 않습니까? 신부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신부님이 이 험한 곳에서 돌아가신다면 저도 기꺼이 같이 죽겠습니다.“
이것이 저와 마티아가 서로를 위해 말다툼 할 때, 저 헌신적인 마티아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동행할 기력이 없는 마티아를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이번만은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참으로 감동적인 이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티아, 내 말대로 하시오. 명령입니다. 당신이 가져온 마른 과일 절반은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은 내게 주시오, 제발 순명하시오!”
그러자 그는 저를 쳐다보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바람에 저도 마음이 짓눌려 참을 수가 없어서 그의 손을 붙잡고 같이 통곡했습니다. 몇 마디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저는 혼자 떠났습니다. 한참을 갔는데도 마티아는 그 자리에서 저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 .(성지내 안내글에서)
경북의 사도 칼레(Calais, 姜, 1833~1884) 신부
경북의 사도 칼레(姜)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1860년 7월 5일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4월 7일 한국에 입국하여 1866년까지 5년 동안 경상도 서북부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로 여러 차례 체포될 위기를 넘기고 한실 부근 산속에 숨어 있다가 그해 10월 폐롱(Feron, 權) 신부와 함께 한국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갔다. 그 후 여러 차례 재입국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병인박해 때 얻은 병까지 악화되어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1869년 4월 시토회 수도자가 되어 모벡(Maubec) 수도원에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일생을 마쳤다
복자 박상근 마티아(1836~1866)
박상근 마티아는 경상도 문경현에서 아전(衙前)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고, 관아(官衙)에서 신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
평소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열심히 가르쳤고, 어린이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든지 그곳으로 달려가서 대세(代洗)를 주었다.
칼레(N.Calais, 姜) 신부로부터 성사를 받는 행운을 가졌던 박 마티아는 병인박해가 일어나던 1866년 3월 중순경 좁쌀을 사기 위해 지금의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의 한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칼레 신부를 만나 문경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서 숨겨드렸다.
1867년 1월(음력 1866년 12월) 마티아는 30세의 나이로 상주 옥에서 교수(絞首)형으로 순교하였으며,
순교 후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고향에 안장하였고,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하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시복(諡福)의 영예를 얻었다.
(아래의 자료는 2022년 3월 5일에 성지를 재순례하면서 추가한 것임)
복자 박상근 마티아 원묘터 주소: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 산 67번지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정면의 산을 보면 원묘터 위치를 알 수 있다.
아래의 글은 안내석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 원묘터
문경현의 아전이였던 박상근 마티아(1836-1866)는 깔레 강(姜)신부와의 우정의 신앙생활로 유명하다. 그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문경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신앙을 버리면 묵인해 줄 것이라는 현감의 설득과 간곡한 권유도 마다하였다. 상주목으로 압송된 그는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 박 막달레나 그리고 인근의 한실, 여우목신자들과 함께 1866년 12월 21일 30세를 일기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천주교 안동교구는 여러 정황과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이곳에서 발굴한 묘가 <치명일기>가 전하는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의 묘인 것으로 확인하고, 1958년 9월, 박상근 마티아의 묘를 발굴하였다. 현재는 마을 입구 좌측(마원리 599-1)의 동산으로 이장(移葬), 교구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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