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교구 성지

살티공소/부산교구

오안드레아 2023. 9. 26. 18:04

올해(2023년)으로 155년의 역사를 지닌

살  티  공  소

부산교구

 

1868년 설립

 

관할본당: 언양성당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살티길 9

 

간월 공소가 무너지자 거기에 살았던 신자들이 더 깊은 안살티로 들어가 정착하다가

점차 박해가 뜸해지면서 논밭을 경작할 수 있는 살티로 옮겨 와 살티 교우촌을 이루었다.

증거자 김영제(1827~1876, 베드로)가 1876년 형장으로 인해 장독사(杖毒死)한 곳이며,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를 비롯하여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의 고장이기도 하다.

 

1868년에 설립된 살티 공소는

언양 지방의 간월 공소(1815~1860), 대재 공소(1840~1868)에 이어 설립된 공소로서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밀양군·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39m) 중턱에 위치한 첩첩산중의 신자촌이었다.

임진왜란 때의 피난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矢峴)이라는 뜻과

박해를 피해 와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살티, 살틔, 살터, 시현 등으로 표기되어 왔다.

(출처: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공소 입구에 있는 안내문

1982년에 언양성당 주임신부의 글로 된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안  내  문

이곳, 살틔공소는 1860년대 부산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공소(;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내간월 불당골 이곳에서 산넘어 남쪽으로 20리 거리)에서 살다가 1866년 대원군의 병인박해로 일부 교우는 관헌에 체포되어 순교하시고 일부 교우는 재산을 몰수당하고 생명마저 위태로워져 산을 넘어와 피난생활을 하던 교우촌으로 현재에 이름니다. 당시 이곳은 인가와 멀리 떨어졌고 산림이 울창하여 맹수가 들끓는 곳이였습니다. 한가지 예로 이곳에서 출생 멀리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수학 사제가 되신 김문옥(요셉)신부님의 부친은 이곳에서 대구로 판공성사차 가시다 호랑이에 잡혀먹히어 머리만 남은 것을 교우들이 거두어 안장한 묘소가 공소에서 남쪽으로 300m 거리에 있습니다.

지형적으로는 당시 관헌들이 교우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왔다가는 와항을 거쳐 경주로 빠져나감으로 이곳의 교우들이 죽엄을 면하고 무사히 살아남아서 죽엄을 면하고 살 수 있는 살터 혹은 살틔(矢峴시현)이라고 불러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공소에서 남쪽으로 300m 거리에는 당시 간월공소에서 잡혀가서 심한 고문으로 치명하신 순교자 김영제(베드로)님의 묘소가 있습니다. 이곳 살틔공소는 당시 어려운 환경속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을 전체가 교우이며 많은 성직, 수도자들이 나셨습니다. 이는 순교선열의 높으신 얼이 뜨겁게 살아 계심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이에 이곳을 방문하는 후세인들은 당시 그 어려움속에서 온몸으로 주님을 증거하신 순교선열의 높은 뜻을 되세기며 자신의 신앙생활을 가다듬는 의미로 순교자 묘소 참배와 기도를 바라며 특히 순교자 김베드로님께서 복자품에 오르시도록 많은 기도 바쳐주시기 바람니다.

1982725일 언양천주교회 주임신부 하 용달

 

 

공소 내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