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소 새터 공소
대전교구
천주교 신자들이 새로 일군 마을이라 해서
‘새터말’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에 정식으로 공소가 설립된 것은 1898년이었다.
당시 양촌(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거주하던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가 처음으로 사기소를 방문하고
윗 사기소(64명)와 아래 사기소(58명) 두 곳에서 공소를 치른 것이었다.
이때 새터말 신자들은 아래 사기소에서 성사를 본 것으로 추측된다.
퀴를리에 신부에 의해 새터 공소가 설립된 것은 그 후 1901년이었다.
그러나 사기소(점말)의 두 공소는 그 뒤 신자들이 이주하였고,
따라서 현재는 그 유래를 잘 알 수가 없다.
사기소 지역의 신자 수가 줄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즉 옹기 마을에서는 점토가 부족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고,
새터에서는 가뭄이나 좁은 농토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비록 신자들은 줄어들었지만, 남아서 교우촌을 지킨 신자들은 힘을 합쳐
1956년에 현재의 공소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발췌)
충남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198-39 (사기소리 산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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