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공소
대구대교구
관할 본당: 평화 성당
(1958년10월25일 평화성당 소속이 됨)
위치: 경북 김천시 대항면 황악로 1692 (복전리 13-1번지)
◉ 지대골공소(직지공소) :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584
옛날 지대골에 공소가 있어 지대골 공소라 하였다. 위치는 금릉군 대항면 향천리 직지사 밑에 옹기촌이 있었는데, 박해시대 신자들이 이곳으로 모여와 옹기를 굽고 살면서 신자촌이 형성 되었다. 특히 충청도와 인접한 곳으로 상촌, 황간 등지로 신자들이 피난을 다니면서 살았다.
1890년 말 ~ 1900년 초 사이에 순교자의 후손인 서필수(성베네딕도회 서경윤 알벨도 신부의 증조부) 가정과 박정하(박도식 신부의 조부) 가정이 살았으며 1910년에 특히 순교자의 후손인 김수환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 가정이 이곳 지대골 옹기촌에서 살았다. 또 대구 결핵요양원을 설립한 김동한 가를로신부가 이 공소에서 태어났다(1919년) 이 공소는 순교자 후손들이 많이 살았던 공소였다.
이곳에서 살던 신자들도 시대 흐름에 따라 신자 수는 줄어들고 공소는 점점 쇠퇴하여 갔다. 당시 공소 회장은 송하삼이였고 그 아들 송학봉이 그 집에 살았다.
1950년 경에 최재선 요한신부(황금성당 주임신부)가 지대골 공소를 대신하여 건너편에 초가를 구입 개조하여 임시 공소로 사용하면서 직지공소라 칭하였다.
1961년 평화성당의 초대 신부인 탁신부가 전교회장을 두어 전교활동을 시작하면서 신자수가 늘어 새 공소를 짓기 위해 공소 부지를 대항면 복전동에 구입하였는데 그 당시 부지는 약 1,980㎡(600평)이다
평화성당 2대 주임신부로 김 베다신부가 부임한 후, 1967년 12월에 현재의 직지공소가 준공 되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자 수는 늘어 185명에 이르렀다.
3대인 곽 미카엘신부가 부임한 후 약 1280여 명까지 늘었으나 농촌 경제의 어려움으로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면서 신자 수는 차츰 감소되었다.
1984년에 본당 관할권이 왜관 감목대리구에서 대구대교구로 이양됨에 따라 전교회장 제도는 없어지고, 공소신자는 본당으로 주일 미사 및 모든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1987년 10월 25일 최규홍을 위촉하여 공소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약 3년간 돌보게 하였다. (평화성당 카페에서 퍼옴)
'- 대구대교구 공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계공소/대구대교구 (0) | 2022.10.15 |
---|---|
옥성공소/대구대교구 (0) | 2022.06.21 |
신암공소-김천/대구대교구 (0) | 2022.01.21 |
광천공소/대구대교구 (0) | 2022.01.17 |
부항공소/대구대교구 (0) | 2022.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