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공소
대구대교구
1890년 후반 설립으로 추론
관할본당: 동명성당
공소 설립 당시에는 가실성당 관할이었고,
그 후로 비산성당, 칠곡성당을 거쳐 지금은 동명성당 관할공소이다.
원당공소의 시작은 병인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인들이었다. 한티에서 원당으로 내려온 신자들은 여릿재를 넘어 학명리(흑다리)나, 동명을 지나 여부재를 넘어 신나무골로 오가며 몰래 전교를 하였다. 병인박해 당시 남원리에는 조씨와 신씨 두 성씨의 천주교인이 있었는데, 박해를 피해 온 신자가 최씨를 권면하여 영세시킨 후 최씨 소유의 아래채 사랑방(남원리 504)을 공소로 사용하였다. ‘작은 한티공소’로 통했던 원당공소는 1900년대 초부터 한티공소보다 신자가 더 많았다. 1915년 11월 7일 대구대교구의 초대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가 순회방문을 와서 이곳에 이틀을 머물렀다. 1922년에 91명까지 신자가 증가한 후 1970년대 초반까지도 60명의 신자가 있었다. 현재 공소건물은 최만학(베드로)이 기증한 땅에 1966년 11월 1일 상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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