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열성당 전신 본당
안대동성당
전주교구
주보성인: 성모성탄
1910년 설립
1959년 익산 함열읍으로 이전하면서 함열성당으로 개칭
안대동성당은 전라도 천주교 포교사에서 유서 깊은 성당이다.
1878년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이던
프랑스 신부 리델(Ridel)[李福明] 주교가 체포되어 청나라로 추방되자,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블랑(Blanc)[白圭三] 신부와 두세(Doucet)[丁加彌] 신부는
전라북도 용안군 용안면 안대동[현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동지산리]으로
피신을 와 순회 전교를 시작하였다.
블랑 신부는 1880년에 서울로 돌아가 주교 대리직을 맡게 되었지만,
두세 신부는 떠나지 않고 전교를 계속하였다.
1885년 이후 조스(Josse)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있으면서
안대동성당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이때 주보 성인은 성모 성탄이었다.
제2대 베르모렐(Vermorel)[張若瑟] 신부는 관할하고 있는
익산과 임피 지방 공소 일부를 담당할 신부를 임명해 줄 것을
뮈텔(Mutel) 주교에게 요청하였다.
용안이나 함열이 성당을 건립하는 데 적당하다고 제안하였다.
뮈텔 주교는 베르모렐 신부의 편지를 받고
서병익[바오로] 신부를 새로 설립할 본당 신부로 임명하였다.
베르모렐 신부는 서병익 신부를 안대동에 상주시키고,
안대동성당이 설립되었다.
그 뒤로 성당 주임 신부의 잦은 이동과 지역 통폐합으로 주임 신부가 공석이 되어
1921년까지 안대동성당은 나바위성당 소속 공소로 있었다.
안대동성당은 1938년 나바위성당 이약슬[요셉] 신부와 안대동 신자들이 성당을 신축하고,
허일록[다테오] 신부가 부임하면서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57년 안대동성당을 익산군 함열읍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세워지면서
함열읍에 함열성당이 신축되었다.
1958년 익산시 함열읍 와리에 본당이 신설되었고,
1959년 1월 10일 이전하였다. 이때부터 함열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전북 익산시 용안면 안대동길 16




▼본당
본당 건물은 2023년 2월에 순례할 당시 그대로 였다.




안대동 성당의 성전이 있었던 공간이다.
용안 성당(익산 용안면)을 건립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안대동 성당 터를 팔았고,
여기를 공장으로 한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사제관
사제관은 신부들의 숙소이자 교육공간으로 사용되었답니다.
2024년 6월 사제관을 보수를 한 후 전시,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되어 있다.


▼사제관 내부 문화복합공간의 전시물 중 일부





1959년 1월 본당이 함열로 옮겨지면서 안대동 본당의 역사가 끝났다는 내용도 있다.


안대동 성당 설립에 초석을 다진 조스 신부에 대한 기록.
조스 신부(1851-1886)프랑스 외방선교회 선교사,
1883년 10월에 조서에 입국하였고,
전라도 북동부 담당사제로 활동하다 1년만(조선에 입국한 지 28개월)인
1886년 향년 37세로에 동지뫼에서 선종. 현재 되재 공소 뒷산에 안장되어 있다.


사제관의 지하실 모습이다.
지하실 용도는 식재료 보관이나
은신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지역에 일어난 가톨릭 역사 중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이 라파엘호를 타고 나암포(나바위 성당 뒤편)에 상륙했던 일과,
나바위 본당을 설립한 베르모렐 신부는 나바위에 머물 장소가 없어
약 3개월간 안대동공소집에 머물면서 나바위 본당 설립을 준했다는 내용도 있다.



▼교우 사랑채





▼구호물자창고
6.25 한국전쟁 후 구호물자를 보관,보급했던 창고였고,
2024년 이 후 현재 기도실로 꾸며져 있다.




▼구호물자창고 내부를 아래와 같이 기도실로 되어있다.




구호물자창고 내 지하실로
식재료를 보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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