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성지

도앙골성지/대전교구

오안드레아 2020. 9. 30. 21:38

유서깊은 교우촌

최양업 신부께서 귀국하여 사목활동 중 첫 번째 편지를 쓴 곳

 

도앙골성지

대전교구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249

 

 

하부내포성지(서짓골성지, 삽티성지, 도앙골성지) 중 한 곳.

 

 

1849년말 귀국하여 열달동안 전국곳곳의 신자들을 찾아 순방을 하고

이곳 도앙골의 신자 집에서 귀국활동편지를 조선에 귀국한 후 처음으로 작성하여 상해의 파리외방선교회로 보냈고,

편지에는 도앙골의 신자들이 교리에 밝고 법규도 열심히 지키며 산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도앙골성지 어귀에 세워져 있다.

도앙골성지와 삽티성지 순례길 안내판

이 순례길은 도앙골과 삽티계곡에 살던 옛 박해시대 교우들이 넘나들며 내통하던 산길이다.

 

 

 

 

 

성지로 들어가는 외길.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첩첩이 산 뿐이다.

 

 

 

 

야외제대

 

 

 

 

 

탁덕 최양업 시성 기원비

탁덕(鐸德) :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 예전에는 신부(神父)를 가르켰음

 

 

 

 

 

도앙골은 봄에 계곡 양쪽 산에 복사꽃이 많이 피어서 도원골 혹은 도화골에서 유래.

 

 

주요역사: 박해시기에 교우들이 숨어 살던 도앙골역사

 

1850년에 최양업신부 귀국 활동 중 최초 사목보고서 작성

 

 

1866년에 병인박해로 도앙골에 살던 신자들 체포 됨. 그 중 공주에서 치명확인 된 순교자

요 요한,      김 사범,      김 루카,      김 바오로,     오 시몬

(도앙골 대부분의 신자들은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66년에 도앙골에 살던 김순장(요한)은 서짓골 신자들과 함께 갈매못에서 치명하신

안토니오 다블뤼 성인 등 4위의 유해를 수습하여 서짓골에 안장함.

 

 

1890년에 도앙골에 다시 신자들 모여 공소 형성 - 50여명,  

 

 

1970년대에 도앙골 공소가 폐쇄되기 전까지 이곳에 살던 경주 최씨(최양업 신부의 집안)의 후손 중

최춘희(마리아) 성가소비녀회 창립초기 수도회 입회(1947년)

 

 

 

 

성수대

 

 

우애의 집(기도의 집)

 

 

 

 

 

아래 자료들은 2022년 9월 4일에 추가하는 것이다.

비문의 위치는 성지  주차장 입구에 세워져 있다.

순교자135주년 추모비문 및 추모시

비문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순교자135주년 추모비문

소재지: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도앙골

1806년(순조1800-1834)때 공주, 서천 등지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여기 도앙골로 이주하여 살으시다 1866년(고종1863-1907)때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로 김사범(48세), 김바오로(44세), 김루가(어린이), 오시몬 교우는 10월에 오요한(50세)교우는 11월에 붙잡혀 공주로 끌려가시어 이듬해에(1월 김사범, 2월 김바오로, 오시몬, 김루가, 요요한)순교 하셨다.

그리고 도앙골 양지쪽에 교우들의 많은 묘지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장작골편 고개넘어 산골짜기에 교우들이 굴을파서 피신하던 동굴이 있는 데 지금은 흔적이 미미하다.

1890년에 퀴클리에 신부님에 의하여 도앙골공소로 정식 인정(교우52명)되었고, 1904년 이후에는 도앙골공소를 산정, 괴목, 지티를 합하여 금지공소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금지공소에서 윤예종(토마스)신부님, 최춘희(마리아), 김옥희(마딜다)수녀님, 최아네스 종신 동정녀가 배출되었다. 윤예종 신부님은 금사리성당 교우 중 최초의 신부님이시다.

 

 

추모시

위대한 순교자들이시여

영원한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림니다.

도앙골에서 살으시다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임들이시여 장하시도다

장렬히 순교하신 임들이시여

평안히 잠드소서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어 누리소서

135주년 만에야

삼가 명복을 빌며 추모비를 세우나이다

오! 순교자들이시여

편안히 잠드소서

모든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하여

언제나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천상가정에 들어가게 도와주소서

영원히 함께하여 주소서

 

 

 

추모 기념비 기둥

여기에 신앙 후손이 비문을 세우는 까닭이 적혀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고려 초기(918-943)부터 우리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나 이렇다 할만한 고적하나 없고 다만 이곳 도앙골에서 천주교를 믿으면서 살으시다 다섯 분이 순교 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자료(순교자들의 전기 대전교구사 자료3집 79-86페이지)를 찾아볼 수 있어서 감히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추모비를 세웁니다.

서기 2002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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