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 후 순교자 후손들에 의해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
하송공소
안동교구
관할본당: 화령성당
1901년 김천 본당 소속
1936년에 상주 본당으로 편입 되었다가
1962년 4월에 화령 본당이 설립되자 화령 본당 관할 공소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1969년에 새로 공소를 신축하면서 '하송 공소'로 명명하였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2길 19
현재의 하송 공소는 청개 공소와 송내 공소가 합쳐져서 이루어졌다.
원래 이 지역에서는 청개 공소가 가장 먼저 생겼고 후에 송내 공소가 생겨났으며,
이를 합쳐서 '세거리' 공소로 불려오다가
1969년에 베네딕토 수도회 송만협 신부가 새로 공소를 신축하면서 '하송 공소'로 명명하였다.
이 공소는 순교자의 후손들이 1873년 병인박해가 끝나자
이곳으로 피난 이주하여 옹기를 구우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현재 공소 곁에는 신자들이 웅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했던 옹기굴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박해시대 때 신자들이 많이 피신하였던
화령지방의 멍에목, 잣골, 백화산 내원 터, 앵무동 그리고 문경 지방의 갈골, 쌍용, 장자골 등과 이웃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그 신자들과 자주 내왕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1895넌 왜관 가실본당이 설립되어
프랑스 선교사들이 경상도 북부지방을 사목할 때 이곳을 방문하였으며
1915년 대구교구장 안세화 주교가 1차로 경상도 북부지방을 방문할 때
11월 26일에 세거리 공소를 빙문하여 성사를 집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송 공소의 신자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 살던 많은 교우들이 상주시의 부원, 만산, 화산 등지로 이주를 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상주에 복음이 전파되고 상주 본당이 설립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1901년 김천 본당, 1936년에 상주 본당으로 편입 되었다가
1962년 4월에 화령 본당이 설립되자 화령 본당 관할 공소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