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교구 성지

음성 봉암(방축골, 계마대 교우촌) 성지/청주교구

오안드레아 2024. 6. 17. 14:52

방축골, 계마대 교우촌

음성 봉암 성지

청주교구

 

2020년 11월 29일  청주교구 성지로 선포

 

 

충북 음성군 맹동면 봉현로 145 (봉현리 318-3번지)

 

2020년 11월 29일 성지 선포를 알리는 현수막이 공소 담장에 걸려있는 모습

 

 

 

봉암의 ‘방축골’과 ‘계마대’는 1839년의 기해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이주해 와서 교우촌을 만들고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했던 마을이다.

당시 이곳에는 김백심(암브로시오. 1794∼1866), 송군명(바오로), 김경장, 이 베드로 가족이 살았다. 또 얼마 뒤에는 충주 광벌(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살던 민윤명(프란치스코. 1822∼1867) 회장 가족이 계마대로 이주해 왔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사목 순방 도중에 방축골과 계마대에 들러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김백심(암브로시오)의 막내아들 사도 요한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진천 배티에 있는 조선대목구 신학교로 보냈다. 당시 요한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이후 그는 배티 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854년 3월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로 가서 유학했지만, 1863년에 귀국하자마자 환속함으로써 성소의 결실을 얻지는 못하였다.

방축골과 계마대 공동체가 박해자들에게 발각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 때였다. 충주 진영에서 파견된 포교와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자들을 체포한 것이다. 그 결과 김 암브로시오는 서울로 압송되어 1866년에 순교하였고, 그의 차남 김성서(파비아노)와 계마대의 민 프란치스코 회장은 충주로 끌려가 1867년 초에 순교했으며, 이 베드로는 1866년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1868년에는 천안 복구정(천안시 북면 연춘리)으로 피신해 살던 김 암브로시오의 장남 김성회(바오로)와 막내 사도 요한(신학생 출신)이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방축골ㆍ계마대 출신 순교자 중에서 민윤명(프란치스코) 회장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봉암 성지내의 봉암 공소이다.

 

봉암공소

청주교구

 

1980년 설립

 

관할 본당: 맹동 성당

 

 

충북 음성군 맹동면 봉현로 145

 

 

봉암 공소는 방축골 교우촌과 계마대 교우촌의 신앙 생활의 요람

 

1890. 봉암공소 설정(1대 회장 – 정무선 요셉)

1896. 감곡성당 봉암공소 편입(임가밀로 신부)

1944. 봉암회관을 공소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

1955. 진천성당으로 편입

1958. 금왕성당으로 편입(메리놀회 오신부)

1959. 봉암공소 건물 매도

1960. 현 봉암공소 건립 – 대지 190평(628m2) 유석범(시몬) 기증

1980. 4 성모동굴

1997. 대소성당 편입(신성국 노엘 신부)

2010. 8. 17 맹동성당 편입(신용문 야고보 신부)

(맹동 성당 카페에서 발췌)

 

 

 

 

** 아래의 자료는 봉암공소에서 약320m 거리에 있는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예수님과 그의 12제자상과

순교자 민윤명(프란치스코. 1822∼1867) 회장의 묘이다

 

야외제대
6명의 순교자로 된 제대

제대를 이루고 있는 6명의 순교자는

왼쪽부터 순교자 민윤명(프란치스코, 병인박해 1867년 45세 때 순교,하느님의 종 72위,시복 추진 중),

순교자 김백심(암브로시오, 병인박해 1866년 72세 때 순교),

순교자 김성희(바오로, 병인박해 1868년 45세 때 순교)

순교자 김성서(파비아노, 병인박해 1868년 33세 때 순교)

김 사도요한(병인박해 1868년 33세 때 순교),

이 베드로(병인박 1866년 순교)

 

 

 

착한목자 예수님상
예수님과 12제자 상
순교자 민영명 프란치스코의 묘
방축골 지명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2022년 7월 12일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