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교구 성지

연풍순교성지/청주교구

오안드레아 2021. 6. 13. 14:34

신앙의 길목이요 교차로,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소를 모시고 있는 곳

연  풍  순  교  성  지

청주교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홍문2길 14 

 

 

 

박해가 계속되던 시절.

연풍의 산간 지역은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풍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넘는 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습니다. 그럴 때면 신부님들은 연풍 골짜기에 숨어살던 교우들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습니다.

이내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가 되었고, 신앙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청주교구 홈페이지)

 

 

 

대성당과 소성당

 

대성당 성전

 

대성당 출입문
대성당과 소성당 사이의 중정

 

소성당 출입문

 

형구돌

교수형 형구돌

연풍성지에서 모두 4개의 형구돌이 발견되었는데,

1964년에 발굴된 첫 번째 형구돌은 절두산순교기념관에 기증,

1972년에 발굴된 두 번째 형구돌은 성지 내 성 황석두루까 묘소 앞쪽에,

1992년에 치명터 50미터 지점에서 발굴된 세 번째 형구돌은 대형십자가 정면쪽에 안치되었다.

 

 

 

 

 

 

 

대형십자가와 순교현양비가 있는 야외제대

치명터(사형장) 

대형십자가 부근의 이곳은 사형장, 옥터, 또는 도살장이라고 부른다.

죄인들이나 천주교를 믿다가 잡혀온 교우들이 형방 건물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배교하지 않으면 옥에서 끌어내

이곳에서 처형하기도 한 곳이다.

1859년 김요셉(68세)이 치명 순교했으며 전바오로(23세)가 형구돌로 순교7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의 피 흘림이 있었던 소중한 순교터이다. 현재 병인박해때 ‘연풍출신 순교자’로 확인된 분은 그밖에 황안드레아, 추순옥, 조아오스딩, 간그레고리오, 김군심베드로, 황요한, 김마르티노, 김마테오, 조베로니카, 이유일안토니오가 있다.

 

 

 

 

제대 왼쪽에 있는 순교현양비

 

대형십자가, 성모상과 사도요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사도요한의 모습은 복음 말씀에 따라 재현된 모습이다.

 

 

 

 

 

 

황석두 루카 성인 상
십자가의 길 입구

 

야외 십자강듸 길

 

왼쪽은 황석두 루카 성인 묘이고, 그 뒤로 옛 연풍공소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다섯 성인상이다.

 

황석두 루카 성인 의 묘

황석두 루카 성인

1813년 연풍 병방골 (현 괴산군 장안면 방곡리)의에서 출생

1834년 영세 입교

1858년 주교, 신부의 회장 겸 복사로 활동

1866년 (3월 30일) 보령 갈매못 (현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서 주님수남 성 금요일에 군 문효수로 순교.

순교 후 양자 황 요한에 의해 고향 병방골에 안장됨.

1968년 (10월 6일) 병인 순교 복자 24위에 포함되어 시복

1980년 (7월 9일) 병방골 평해 황 씨 문중 묘에서 묘소 확인 발굴

1982년 (8월 25일) 수안보 성당에 모셔져 있던 유해를 연풍성지로 천묘 축성.

1984년 (5월 6일) 한국순교성인 103위에 포함되어 시성(서울 여의도 광장)

 

 

 

 

다섯 성인과 반석

다섯 성인상과 반석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3월 30일 보령 갈매못 (현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서 순교한 다블뤼(안 안토니오)주교, 오메트로(오 베드로)신부, 위앵(민 루카)신부, 황석두(루카)회장, 장주기(요셉) 회장 등 다섯 성인들이 서울로 압송될 때,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갈매못으로 압송되는 도중에 쉬었다는 반석.

고 오기선(요셉)신부가 1970년 12월 2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서 발견하여 절두산순교기념관에 안치하였다.

 

 

 

 

 

 

 

한국인 초대 대주교 노기남 바오로 상

황석두 루카 성인의 천묘식을 주례하고 축성하였던 것이 대주교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옛 연풍공소

향청 鄕廳

충북 문화재 자료 제13호(1994.06.24)

이곳은 연풍면 수령의 행정을 보좌하던 자치기구 향청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풀속을 바로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정을 대변하는 등의 일을 했다.

숙종17년(1691)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주재소로 사용되었으며,

1963년 부터는 천주교 연풍공소로 사용되었다.

연풍순교성지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3년 연풍공소로 향청 건물을 사들이게 되면서부터 이다. 3백년 된 이 건물을 매입할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이 순교자들의 피와 얼이 배어있는 순교지일 것 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매입 후 논과 집터 정리 작업 중, 박해 때 순교자들을 죽이ㅐ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들이 발견되었고, 이후 황석두 루카 성인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1982년 성인의 묘를 모시고 성지 개발이 본격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