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교구 공소

괴연공소/대구대교구

오안드레아 2026. 5. 23. 13:37

2024년 4월에 이어 2026년 5월에 재순례한

괴연공소

대구대교구

 

설립년도: 1902년 

(2025년에 설립 123주년 기념식이 있었던 것을 기준으로 한 것임)

공소 설립 123주년 기념 및 박봉일(베드로) 공적비 제막식이

2025년 2월 17일에 있었다.

 

관할본당: 영천 성당

 

경북 영천시 괴연2길 42

 

괴연공소는 용평성당이 설립되어 있던  당시에 설립된 공소로,

 

1800년대 용연동 골짜기에 있었던 공소방은

도요지(도예)를 팔러가는 보부상들이 밀양, 청도를 오가는 길목에 자리했다.

박해가 심하던 때, 선교를 할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선교가 된 자리로

충청도 등 타지에서 박해를 피해 피신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다 () 박동준 신부의 아버지인 박봉일(베드로) 형제가

1900년대 자신의 집과 사비를 털어

새로이 공소를 마련하여 포교로 교우를 모았다고 전해진다.

 

외국인 신부들의 왕래가 있었으며,

1951년 보급물품 때문에

일순 교세가 확장되어 100명이 넘는 신자가 있기도 했지만 점차 그 수가 줄었다.

현재의 공소건물은 옛 공소를 허물고 폐교를 뜯어서 공소로 사용하다가

2000년 어느 독지가의 도움으로 마련됐다.(출처:  No.314, )

 

박봉일 베드로 공덕비

박봉일 베드로

(1867 ~ 1950)

박봉일 베드로 회장이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것은 같은 마을의 김 씨라는 사람과 임야 문제로 시비가 붙었을 때 프랑스 신부님의 중재로 문제가 해결되자, 신부님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소회장이 되기 전부터 자택으로 공소를 이전하였고, 1915년에는 초가 4칸을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공소회장이 된 이후 30여년간 공소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이웃에 대한 사랑도 크시어, 마을에 병자가 생기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약을 지어 와서 정성껏 보살폈다. 특히 손님을 환대했으며, 가끔 신자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2~3일씩 숙식을 같이하고 돌려보냈다. 외인 임종대세에 열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었다. 개인적인 수계생활도 철저하였다. 아침 저녁기도,삼종기도,묵주신공은 궐하는 일이 없었고, 주일 첨례는 물론 축일표에 기록되어 있는 소첨례까지 충실하였다. 세수하실 때 물을 떠놓고 성호경을 그으며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주님 이 물로 내 육신을 씻음과 같이 내 영혼도 씻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리신 다음 세수를 하였으며, 후손들의 신앙을 엄하게 다루었다. 부인 송도음 루피나와 함께 사시며 8남매를 두었는데, 막내아들을 포함해서 후손들 중에 6명이 사제가 되었고, 2명이 수녀가 되었다. 회장님의 공적을 이 비에 다 새길 수 없어 후손들이 소책자를 발간하여 기리고자 한다.         202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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