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성지

신리성지/대전교구

오안드레아 2021. 7. 5. 14:52

조선 천주교회의 요람이며  다블뤼 주교 유적지

신 리 성 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 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내포지역의 천주교는 1784년 여사울 출신의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신리는 조선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으로 주민 400여명이 모두 신자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신자들이 많았던 만큼 박해도 심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한 곳이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통해 마을 전체 신자가 순교하거나 피난할 정도였는데 인근에 있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가 이를 말해준다.

 

신리는 박해를 겪는 조선 교회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서해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고,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신리에서 체포되어 보령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하였고 후일 성인이 되었다.

 

 

 

성 손자선 토마스 생가 - 성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 후일 공소로 사용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로

이곳에서 성 다블뤼 안 주교님께서 머무시면서 선교활동을 지휘하고, 조선 순교사 비망기를 기록했다.

따라서 이 집은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이며, 조선 제5대 교구청이기도 했다.

 

 

1927년 신리의 신자들은 다블뤼 주교가 지냈던 손자선 성인의 집을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

 

주교관 마당에 있는 순교복자기념비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위앵 루카 신부,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성 손자선 토마스 회장, 성 황석두 루카 복사 다섯 분의 순교 복자 기념비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상

 

 

잔디밭 위에 다섯 성인의 이름으로 된 다섯 경당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것처럼 개방형으로  삼각지붕을 하고 있는 경당이 다섯 곳이 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경당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손자선 토마스
성 황석두 루카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성 위앵 루카 신부

 

야외 성당

 

성지 내 성당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  2006년 5월에 축성되었다.

 

 

순교미술관

 

십자가의 길
신리 무명 순교자의 묘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성 위앵 루카 신부가 체포된 거더리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