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성지

성거산성지/대전교구

오안드레아 2021. 7. 7. 20:48

박해시대 형성된 교우촌, 선교사들의 사목중심지, 순교자들의 묘역(줄무덤)

성거산성지

대전교구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

 

 

성거산 일대는 180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들이 곳곳에 있었다. 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신자들이 신분을 감추고 생활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학의 둥지와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소학골과 인근의 서들골을 중심으로 여러 교우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산골 신앙공동체였다.

성거산 교우촌은 산골이면서도 주변의 다른 신앙공동체들과 연락을 취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성거산에 와서 휴식과 사목활동을 하며 편지를 작성하여 본국으로 보냈고, 주변의 공주와 서천, 충북 배티, 경기도와 경상도의 교우촌들과 연계도 가능했다. 이곳에서 활동한 성직자는 다블뤼(Daveluy) 주교, 최양업 신부, 메스트르(Maistre)ㆍ페롱(Ferron)ㆍ프티니콜라(Petitnicolas) 신부 등이 있다.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성거산 출신의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1866년 성거산에서 잡힌 배문호 베드로와 최천여 베드로 등 일곱 분이 공주와 청주에서 순교하였고, 1867년에는 배화첨 베드로 등 여덟 신자들이 서울과 죽산에서 순교하였다. 성거산 출신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살다가 순교한 분들도 8위 이상이 된다. 이들 중 공주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유해가 성거산 줄무덤에 안장되어있다

 

 

 

 

줄무덤 가기전 약 3km 전에 있는 성지 성당,

 

제1줄 무덤

이 곳은 병인년 소학골 교우촌 출신 배문호(베드로), 고의진(요셉),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라자로), 채씨 며느리와

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제1줄 무덤이다.

 

이 다섯분의 순교자들은 1866년 10월(음력)에 비밀공동체였던 소학골 교우촌이 발각되자 포졸들이 덮쳐 병인년 1866년 10월 8일(음력)에 배문호(베드로)와 고의진(요셉)이 체포되었고, 이틀 뒤인 10일에는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라자로) 형제와 채씨 며느리 등 다섯 명이 체포되어 모두 목천현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고, 다시 공주진영으로 압송되어 많은 고문을 받으며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 뒤 11월 8일(음력)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 다섯분의 시신은 당시 청주 절골에 사는 강치운씨가 이 곳 소학골에 묻었다. 그 밖에 병인년에 내포지방의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한 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가 있는 곳이다.

 

 

제1줄 무덤

 

제1줄 무덤에서 제2줄 무덤까지 있는 십자가의 길

 

야외 미사 터

 

야외 제대의 십자고상

 

야외 재대 맞은편에 있는 성모동산

 

제2줄 무덤

 

성인에게 기도하면서 갇는 기도길. 이 길 끝에 병인박해 기념 성당이 있다.
병인박해 기념성당 - 공사중
성전은 2층

 

고상은 제대 뒤의 유리창 밖에 있다.
소학골 교우촌 입구에 있느느 조형물
소학골 교우촌을 내려다 보고 있는 예수님.

 

소학골 교우촌 내에 있는 십자가의 길

 

소학골 교우촌 집터
팻말이 있는 곳이 집터이다.
교우촌 내에 조성한 교우들이 살던 집을 재현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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