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성지

홍주성지/대전교구

오안드레아 2021. 7. 18. 16:28

충청도의 첫 순교터,

전국 두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홍주성지

대전교구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37-1

 

 

홍주는 1784년 한국천주교 창설초기부터 충청도의 첫 신자인 이존창의 영향으로 복음이 활발히 전파된 곳이다. 천주교 신자가 제일 많았던 홍주지역(내포지역)은 행정, 군사의 요충지인 홍주목과 진영이 있던 관계로 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기록상으로만 초기 박해(신해~정사)동안 8명, 이어 중기 박해(신유~기해)동안 4명, 병인박해에 200명이나 된다(총212명). 박해기간(1791~1869) 동안 무명 순교자까지 1,000명이 넘는 순교자를 탄생시킨 거룩한 성지이다.

특히 원시장 베드로는 신해박해 때 홍주 옥에서 세례를 받고 추운 날 동사형으로 순교하여

충청도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순교 터 3곳
- 홍주 옥(1871년 홍주목지도, 구 검찰지청 및 법원지원자리) : 113명(교수형100명+옥사13명)이 순교한 최대의 순교 터.
- 생매장 터: 홍주성 밖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근처에 생매장터가 있다.
- 참수 터: 홍주성 북문 밖 월계천과 소향천이 만나는 북문교 아래 100m지점

::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 한 장소 3곳
- 경사당 자리: 순교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당하던 홍주진영의 동헌(현. 한국통신 자리)
- 근민당 자리 : 홍주 목사의 동헌(현. 군청 뒤뜰)
- 저잣거리 : 순교자들이 조리돌림을 당하던 장소(구. 예비군중대 터)

 

 

성지에서 추천하는 순서에 따라 순례한다.

 

 

 

** 성지 성당

홍주의 순교자 212명 중 4위 복자(원시장 베드로,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 황일관 시몬)와 충청도 첫 순교자 원시장이 한겨울에 끼얹은 물에 얼음덩이가 되어 숨을 거두면서 드린 봉헌기도(세로 액자)

 

 

 

** 순교 1터▷증거터---근민당 자리 : 홍주 목사의 동헌(현. 홍주군청 뒤뜰)

홍주목사가 머물던 곳으로 순교자들이 잡혀와 처음으로 고문과 배교를 강요했던 곳으로 복자 박취득(라우렌시오) 외 211명과 무명 순교자 700여명이 천주교 박해 시기 도안(1791~1869)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신앙을 증거 했던 장소이다.

홍주 동헌 정문(현 홍주군청)

 

** 순교2터▷홍주 옥(1871년 홍주목지도) : 구 검찰지청 및 법원지원 자리

충청도의 첫 순교터이며, 113명(교수형100명+옥사13명)이 순교한 최대의 순교 터.

이곳에서 원시장 베드로는 동사(凍死)로 순교, 모방 신부, 샤스텡 신부가 잠시 갇혀있던 곳이기도 하다.

 

 

 

 

**순교3터▷경사당 자리: 현. 한국통신 자리

순교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당하던 홍주진영의 동헌. 가장 많은 고문과 박해가 있었던 곳

 

조양문 뒤 높은 건물이 경사당 자리로 현재 한국통신이 자리하고 있다.

 

**순교4터▷저잣거리 :구. 예비군중대 터

 순교자들이 관아로 끌려갈 때나 처형되기전에 조리돌림을 당하던 장소

 

 

 

**순교5터▷참수 터: 홍주성 북문 밖 월계천과 소향천이 만나는 북문교 아래 100m지점

 

 

 

순교5터에서 순교6터로 가는 길목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순교6터▷생매장 터: 홍주성 밖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근처에 생매장터가 있다.

천주교 4대 박해 중 최대 박해인 병인박해 때 너무 많은 내포의 천주교인들을 수용할 감옥이 부족하자 그 대응책으로 일부 천주교 신자들을 생매장한 곳이다.이곳은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가장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서 죄인들을 생매장하거나 시신을 버리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생매장터에 홍주성지 야외미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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