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리공소
(국가등록문화재 제734호)
마산교구
1893년 설립
관할본당: 고성성당
경남 통영시 광도면 황리임내길 100
1935년 6월 황리공소는 고성지역 첫 본당이 된다.
황리본당 초대 주임은 명례성지 신석복 마르코 순교자의 손자 신순균 신부였다.
황리공소에 관한 첫 기록은 1897년 부산 초량 '우도'신부의 보고서다.
교우수 17명, 예비자 3명이었다.
당시 고성에는 계동(기월리), 장동, 황리공소가 있었다.
거제와 남해안 일대에 흩어져 살던 교우들이 육로와 뱃길이 용이한
황리지역으로 병인박해와 무진박해 직후에 숨어들었다.
황리는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뱃길의 요지였어
기월리 보다 고성지역 첫 본당이 되는 이유였다.
하지만 자동차의 등장으로 뱃길에 의존하던 교통이 육로로 바뀌자
상권이 기월리 쪽으로 옮겨갔고
고성에 읍이 생기자 본당도 기월리로 옮겨갔다.
지금은 모두 도외지로 떠나고 오래된 공소의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출처:마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상량문 시작과 끝에 십자가를 표시하고
천주강생(서기) 1934년 4월 2일에 주춧돌을 놓고,
같은 달[月] 9일에 기둥을 세우고, 11일에 상량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처음서 부터 공소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1934년에 건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