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순교성지
서울대교구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절두산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지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월과 10월에 조선을 침범하였다.
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대와의 교전 후 천주교 신자들을 이곳에서 주로 처형하였다.
그 이유는 프랑스 함대가 거슬러 올라왔던 한강의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함으로써,
프랑스 함대의 조선 침범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림과 동시에 그 본보기를 보이려한 것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유명, 무명 신자들이 처형된 양화진은
순교자들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신자들 사이에서 ‘절두산(切頭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상 확인된 신자수는 29명(무명5명 포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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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 왼쪽의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과 오른쪽의 문의 문양
맨 위층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고, 그 아랫층은 작품 전시실이다.
계단으로 끝까지 올라가면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성당'이 있다.
무릎이 약하신 분은 계단 앞으로 나있는 완만한 길로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왼쪽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고 오른쪽이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이다.
성인유해실에는 현재 27위의 순교성인들과 무명순교자1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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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바위五聖石
다섯 성인들이 잠시 쉬어 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바위.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오 메트로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등은
처형지인 갈매못으로 끌러가는 도중에 그 길목인 내포 땅, 아산군 음봉면 길가의
이 넓적한 바위에 앉아서 신앙을 다짐했다고 한다.
문지방돌門地枋石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는 184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이후
충청도 합덕의 신리에있는 교우촌에 머물렀는 데,
이 문지방돌은 당시 마련된 임시 거처에 있었던 것이다.
앞에 보이는 십자가는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 건립 당시의 십자가이고,
사진의 왼쪽부터 ①박순집 베드로(1830-1911)의 묘와 묘비,②박순집 일가의 공적비,
③성 남종삼의 백부이자 양부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의 청덕거사비淸德去思碑,
④ 성 남종삼 요한의 흉상, ⑤성 남종삼의 순교 사적비,
⑥은언군, 송마리아의 묘비(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과 그의 부인 송마리아는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신유박해 때 사사되었으나,
철종2년(1851)에 사면되어 이 비가 세워졌다),
사진의 왼쪽 묘비 뒤에 박순집 베드로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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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입구에 있는
'빨마'와 '순교자의 모후'
순교자박물관 내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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