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교구 성지

백령성당-백령도/인천교구 순교 신심 순례지

오안드레아 2024. 5. 1. 21:40

인천교구 순교 신심 순레지

백령성당

2019년 3월 19일 교구 순교 신심 순례지로 선포

 

주보성인: 성 야고보

 

1959년 5월 9일 설립

 

관할공소: 용기포공소,  신화동공소,  소가을리공소,  사곶공소,

          화동공소,  장촌공소,  연화리공소,  가을리공소, 

                                                               두무진공소, 관창동공소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254번길 66

 

 

백령도는 천주교 선교사의 해로(海路) 입국 거점

한국천주교회의 초기에 몇몇 선교사들이 중국의 변문과 의주의 관문을 통하여 조선에 입국하였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앵베르(Imbert) 주교, 모방(Maubant), 샤스탕(Chastan) 신부가 1839년에 잡혀 문초받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의주를 통하는 육로로 입국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후 정부의 경계강화로 인하여 육로입국은 매우 위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미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고있던 페레올(Ferreol) 주교는 1846년에 김대건 신부에게 해로를 통한 밀입국로를 개척하라고 지시했다.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를 거점으로 하는 밀입국로를 페레올 주교에게 건의했다. 백령도는 중국 산동반도와 매우 가깝고 매년 봄에는 그 근해 어장에 중국 어선들이 모여드는 것에 착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중국 어선으로 백령도 근해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조선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입국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1846514일 김대건 신부는 서울 마포를 출발, 백령도에 도착하여 앞으로는 선교사들이 백령도를 통한 밀입국로를 이용하라는 페레올 주교의 서한을 중국선원에게 전달한 후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의 착안과 개척의 덕으로 백령도는 1846년부터 1880년까지 프랑스 선교사 17명의 해로(海路) 입국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 6명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이 집전한 한국천주교회 창립200주년 기념 미사중에 성인품에 올랐다. 백령도를 거쳐 입국한 선교사들의 이름과 입국년도는 다음과 같다.

(1) 메스트르 신부 1852, (2)베르뇌 성인주교 1856, (3)프티니콜라 신부 1856,

(4)푸르티에 신부 1856, (5)랑그르 신부 1861, (6)조안노 신부 1861,

(7)리델 신부 1861, (8)칼레 신부 1861, (9)오메트로 성인신부 1863,

(10)위앵 성인신부 1865, (11)볼리외 성인신부 1865, (12)도리 성인신부 1865,

(13)브르트니에르 성인신부 1865, (14)블랑 신부 1876, (15)드게트 신부 1876,

(16)뮈텔 주교 1880, (17)리우빌 신부 1880

 

박해시 선교사 입국에 약속 장소로 큰 몫을 한 백령도는 심한 박해 와중에서도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들의 입국에 도움이 되어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한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서 문화와 사상을 만나게 해준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러므로 백령도는 한국 천주교회의 문화 유적지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동서 문화와 사상적 의미로 재조명되어야 할 장소인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참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주보성인 성 야고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

 

①용기포공소  ②사곶공소  ③백령성당  ④관창동공소 

⑤신화동공소  ⑥흑룡공소(군종)  ⑦가을리공소  ⑧두무진공소 

⑨연화리공소  ⑩소가을리공소  ⑪장촌공소  ⑫화동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