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년 전에 우연히 다녀온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한번 더 가 보고 싶었던 기회가 생겨서 다녀왔다.
시선 김삿갓 유적지라는 안내석의 시선(詩仙)이라는 글에 시선이 꽂혔다.
삿갓을 쓴 방랑시인 김병연
그는 김해 김씨로 양반 자손이었다.
자(子)는 성심, 호(號)는 난고이고 립(笠,삿갓)은 방랑할 때 사용한 이름이라고 한다.
순조 11년(1811)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하면서 집안이 몰락하자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이라는 멸시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영월 삼옥리에 정착하였다.
반역죄로 조부인 김익순이 능지처사를 당하였고
이로인해 문중에서 거의 추방된 이들 모자는
산속 깊은 곳에서 권문세족임을 밝힐 수 없이 살아가야 했다.
이런 곳에서 김병연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만 정진을 하여온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하였다.
뛰어난 글 솜씨로 장원급제를 하게 된 난고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과거시험의 시제가 조부 죄인 김익순에 대한 것을 모르고
조부 김익순을 비판한 것으로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 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 하였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전국을 돌다가 전라도 동복땅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 하였다.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샘물을 떠 마시면서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읊은 시로
나그네로 늙어가는 세월이 보인다.
시선 김삿갓 난고 선생 유적비와 앞에 갓을 쓴 꼬마신랑상
김삿갓은 꼬마신랑을 보고 시 한 수를 남겼다.
꼬마신랑
솔개도 무서워 할 작은 몸 갓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 기침해서 내뱉은 대추씨앗인가?
사람마다 모두 이와 같이 몸집이 작다면
한 번 출산에 대여섯의 아이를 낳을 수 있겠지
환갑
저기 앉은 저 노인네 사람 같지 아니하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가 하노라
슬하에 일곱 자식이 모두 도둑놈인 것이
하늘에서 복숭아를 훔쳐다가 잔치를 빛내누나
어첨 그 때나 지금이나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이 호의호식했나 보다.
난고 김병연((1807-1863) 무덤이다.
그의 생전 모습처럼 무덤도 소박한 것이 그렇게 보인다.
이 길을 따라 1.8km 가면 김삿갓 생가가 복원되어 있답니다.
아쉽게도 무릎 때문에 길만 쳐다보고 돌아섰습니다.
▼ 난고 김삿갓 문학관
김삿갓 유적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정담
다락 위에서 만나 보니 눈이 아름답도다
정은 있어도 말이 없어 정이 없는 것만 같구나
꽃은 말이 없어도 꿀을 많이 간직하는 법
달은 담장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을 찾아들 수 있다오
문전박대1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 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낙엽2
까마귀 쪼는 소리같이 진종일 떨어지더니
텅 빈 뜰에 쌓인 낙엽 화려한 빛을 잃었네
옛 향기 그리운 듯 배회하며 떨어지고
가지에 있을 때를 그리워하며 흩어지누나
밤 깊도록 창 밖에 빗소리 들리더니
아침이 다가오자 강 건너 집 바라보네
그대여, 낙엽 뒤에 오는 찬바람과 눈보라를
이별의 정 서러움이야 낙엽에 비길 손가
삿갓의 노래
간산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금강산8
고요한 암자에 이 내 몸 의탁하여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모두 님께 맡겼더니
외로운 봉우리에 안개 개고 초승달이 떠 올라
늙은 나무꽃이 필 때 늦봄이 오네
친구 만나 술을 드니 흥취가 무량했고
명산에서 시를 읊어 마냥 신기로웠소
선경이 따로 있나 다른 데서 찾지마소
한가롭게 사는 분네 그가 신선이오
허언시
푸른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개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삿갓을 벗어 놓고 누워있는 김삿갓
손으로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안내가 되어 있네요.
김삿갓, 그리고 김병연
김삿갓은 양반의 신분을 버리고 방랑하는 삶을 선택한 조선후기의 방랑시인이다.
그는 한시(漢詩)의 전형적인 주제와 틀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시를 썼던 천재시인이기도 하다.
김삿갓은 당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는 스스로 성姓만 말할 뿐 이름을 밝히지 않아 정체를 숨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삿갓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김삿갓이라 불렀다.
인심의 두얼굴을 만나다
혼자 집을 떠나 30여 년 넘게 방랑생활을 한 김삿갓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하였다. 서당방이 대다수였으며 다음이 머슴방, 그 다음이 친분이 있어 왕래했던 학자들의 집, 마지막이 노숙이었다고 전해진다. 방랑생활 동안 김삿갓은 환대를 받기보다는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문전박대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야박한 인심에는 해학적으로 비꼬는 글을 지어 면박을 주었고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명받으면 감사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시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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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가련이라는 기생의 이름으로 가련한 마음을 담아 연정을 표현한
김삿갓의 재미있는 시 같으다.
▼난고 김삿갓 문학관 뒷 뜰에 있는 김삿갓 문학상 수상자 시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