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교구 성지

한티순교성지-대구대교구 성지

오안드레아 2024. 6. 15. 16:53

신앙선조들이 살고, 순교하고, 묻힌 곳

한티순교성지

대구대교구

 

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1길 69

 


한티순교성지는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이다.

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한 교우들이 팔공산 중턱으로 숨어들어

1850년 말경에 한티는 큰 교우촌을 이루게 된다.

 

병인박해(1866년)가 진행 중이던 1868 봄,

한티에 들이닥친 포졸들은 배교하지 않은 많은 교우들을

그자리에서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박해소식을 듣고 인근에 살던 교우들이 한티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이 산야 곳곳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하여 옮길 수가 없었기에

순교한 그 자리에 시신을 안장하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한티 순교자들의 묘는 모두 37기로

박해 당시의 교우촌과 그 주위에 넓게 흩어져 있다.

그 중에는 당시 공소회장이던 조 가롤로와 부인 최 바르바라,

동생 조아기, 그리고 서태순 베드로의 신원만 밝혀졌고,

그 외에는 신원을 알 수조차 없다.

 

현재 성지에는 박해 후 재건된 공소 터가 보존되어 있다.

(한국천주교 순례 책자에서 옮김)

 

 

 

한티순교성지 안내도 일부
위 안내도에서 화살표가 있는 곳의 모습으로 순교자묘역 입구이다.

 

위 안내도에서 2번에 해당
십자가광장에서 본 십자가와 한티마을 사람
위 안내도에서 3번에 해당

한티마을 사람

한티의 순교자 묘역 내에 십자가 앞마당 우측에 크고 작은 돌들이 서있는데

이를 '한티마을 사람'이라고 부른다.

마을이 있었던 터로 십자가 뒤쪽에 있었던  마을은 박해(1868) 당시 불태워져

없어지고 교우들은 순교하여 없어진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서 있는 돌은 순교자들이고,

바닥의 둥근 돌은 순교자의 머리을 의미 하고 있답니다.

 

 

 

 

 

십자가와 한티마을 사람 사이 길로 걸어 올라가면

바로 순교자 1번 묘부터 보인다

동시에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1번 묘 (무명 순교자)
2번 묘(무명 순교자)
뒤에 있는 묘가 3번 묘(무명 순교자)

뒤에 있는 2기의 묘가 무명 순교자 4번과 5번 묘이다.

앞에 있는 묘는 한티공소 회장을 역임한 조 토마의 묘이다.

 

왼쪽부터 6번, 7번 8번 묘이다.

순교자 묘  37기가운데 주인이 파악된 4기가 있고

그 4기 중에서 3기가 6번, 7번, 8번 묘이다

6번이 조 가롤로의 동생 조 아기 묘이고,

7번은 조 가롤로 부인 최 바르바라의 묘이고,

8번은 공소회장 조 가롤로 묘이다.

 

 

 

 

아래는 교우촌 억새마을이다.

박해를 피해 살아남은 교우들이 관에 의해 불태워서 없어진 마을을 떠나

이 자리로 와서 일군 교우촌이다.

여기 억새마을 교우촌 에는 한티공소 터가 보존되어 있다.

 

 

 

 

 

아래의 자료는 성지내 성당 모습이다.

성모상 맞은 편에 있는 야외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