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대교구 공소 86

예락공소/광주대교구

해남지역의 천주교 첫 선교지 예락공소 광주대교구 1904년 설립 관할본당: 우수영성당 전남 해남군 문내면 예락길 50 1904년 예락마을의 김명범 베드로, 김보현 요셉, 박내국 사도요한 등이 목포성당(현 산정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 해남지역의 천주교 첫 선교지가 된다. 1952년 2월 12일에는 예락공소 출신 김정용 안토니오가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사제출신 공소가 된다. 1954년 4월에는 관할구역이 목포 경동성당에서 해남성당으로 이관된다. 1998년에는 공소 내에 감실을 마련하여 성체를 모셨고, 1999년에는 해남성당에서 우수영성당으로 관할이 이관된다. 2012년에는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성전 지붕과 교육관이 크게 완파되기도 했다.

도포공소/광주대교구

도포공소 광주대교구 1973년 10월 4일 설립 관할본당: 신북성당 전남 영암군 도포면 영호길 38 도포공소는 한센병 완치 후 소록도를 떠나 온 교우들 중 1973년 4~5명의 신자가 주일에 각 가정을 돌며 공소예절을 하면서 시작 되었다. 1974년에는 관할본당인 영암성당 신부가 공동체 자립을 위해 송아지를 각 가정에 한마리씩 분양하였고, 신자들은 송아지를 밑천 삼아 가정생활의 기틀을 마련하고 자발적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3,000평의 농토를 마련하기도 한다. 2007년에 신북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관할본당이 영암성당에서 신북성당으로 이관된다.

고당공소/광주대교구

고당공소 광주대교구 1957년 설립 관할본당: 우수영성당 1999년에 우수영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관할권이 해남성당에서 우수영성당으로 이관된다. 전남 해남군 문내면 문내화원로 535-8 1957년에 학교 사택에서 공소예절을 드리면서 고당공소가 시작된다. 1984년에는 선교사가 부임하여 교세가 확장되어 신자가 100여 명 가까이 늘어나기도 했다. 1986년에는 감실을 마련하여 광주대교구 내 공소 중에서 세 번째로 성체를 모시는 공소가 된다.

봉황공소/광주대교구

봉황공소 광주대교구 주보성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2008년 8월 15일 설립 2013년 8월 24일 옥산공소와 통합 관항본당: 영산포성당 전남 나주시 봉황면 죽황로 17 광주교구의 '1면 1공소 설립' 사목방침과 봉황 전 지역의 선교를 위해서 면소재지에 공소를 설립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봉황공소가 설립된다. 이후 2013년에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옥산공소와 통합을 한다. ▼옥산공소 1908년 노안성당이 생겨난 후 얼마되지 않아서 옥산공소가 설립된다. 1937년에 옥산공소는 노안본당 소속에서 나주본당으로 이관된다. 1954년에 나주성당에서 영산포성당 소속으로 이관된다. 2013년 8월 24일 봉황공소로 통합 주소: 전남 나주시 봉황면 인읍길 57

호혜공소/광주대교구

호혜공소 광주대교구 1953년 1월 설립 관할본당: 남평성당 전남 나주시 산포면 새벽길 16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던 시점 한센병 환자 수용시설이 있는 소록도로부터 완치판정을 받은 이들이 정부의 인가와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각지에 집단촌을 만들고 정착하게 되는 데, 나주시 산포면 신도리에 호혜원이라는 정착촌이 설립된다. 이것이 호혜공소의 시작이다. 1953년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13명의 신자와 예비신자들이 천막공소를 짓고 신당생활을 시작. 2006년에새로 신축하여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데 나주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성전을 두고 떠나게 된다. 그러나 2012년에 새성전을 봉헌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초창기 신자들은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2세들이 양계, 양동 등의 축산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