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성당
서울대교구성지
주보성인: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복자 주문모 야고보,
복자 강완숙 골롬바, 복자 최인길 마티아
1949년 9월 17일설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57
가회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794년 조선에 밀입국하여
1795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한국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주문모 신부는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북촌에 있던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머물면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며 사목 활동을 하였다.
가회동은 주문모 신부의 사목 활동 거점으로서 한국 초기 교회의 신앙 중심지였다.
1955년 8월 9일, 병인박해를 일으켰던 흥선 대원군의 손자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가회동 성당의 관할 구역인 안국동 별궁에서 임종 1주일 전에 세례받기를 원하여, 당시 보좌 신부였던 박병윤 신부에게 ‘비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기의 선조가 천주교를 탄압하여 피로 물들인 점을 자손의 한 사람으로 속죄하고 싶었다고 입교 동기를 밝혔다. 의친왕 이강이 죽기 이틀 전인 15일에는 의친왕비 김숙 여사도 가회동 성당에서 ‘마리아’란 세례명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황족이 세례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순교 신앙의 승리를 입증한 것이다.(출처:서울대교구 홈페이지)
종탑의 종은 1958년도에 독일에서 주물로 제작된 것이다.
▼역사 전시실
1945년 4월 5일 계동 가옥에서 한국 천주교의 첫 부활 미사가 봉헌되는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집주인인 복자 최인길 마티아, 복자 김종교 프란치스코,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 최창현 요한, 복자 윤유일 바오로, 복자 지황 사바, 황사영 알랙시오가 함께 미사에참례하고 있다.
공의회 이전 제대는 벽에 붙어 있어서
미사를 드릴 때 주례사제가 신자들을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미사를 봉헌했다.
이때 벽에 라틴어 미사경본을 붙여놓고 읽도록 했다
옛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새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 구 성전을 해체할 때
성전 건립 당시 공헌한 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던 것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자 정약종이 지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리서 주교요지이다.
강완숙의 집에 숨어계신 주문모 신부의 은신을 주제로 한 작품.
툇마루에 앉아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강완숙 골롬바,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감명을 받은 홍필주 필립보,
안방에는 신부의 은신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강완숙의 시어머니가 있고,
집의 부엌에 간신히 모습이 보이는 주문모 신부가 있다.
사진에서는 시어머니와 주문모 신부의 모습이 빛의 반사로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아랫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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