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인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 그중 5명의 주교가 탄생한
성 유 스 티 나 신 학 교
대구대교구 성지
대구시 중구 명륜로12길 47 (대구교구청 내)
1914년 10월 1일에 개교한 교구 최초의 신학교이며,
현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출발점이 된 건물이다.
드망즈 주교가 신학교 설립을 위해 세계각지에 원조를 구하였을 때
상하이에 거주하는 익명의 신자가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로 모시는 조건으로 거액을 희사하였으므로,
주보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유스티노신학교’가 되었다.
1945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되기까지 67명의 사제를 배출하였으며,
1991년부터는 대구관구 대신학원이 이곳으로 옮겨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소신학교 입학은 보통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 수준을 필요로 하였다. 소신학교(하급 라틴어반)에 신입생이 입학하는 해에는 학력 수준이 뒤떨어지는 뒷부분의 신입생들을 제적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드망즈 주교는 예비과를 신설하여 신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에 이 예비과에서 신학생이 되기 위한 훈련과 기초교육을 시켰다. 예비과 입학의 적정 연령은 유럽 나이로 11살에서 12살이었으며 1년 내지 4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3년마다 실시되는 소신학교 입학에 대비하였다. 소신학교 입학은 대구의 성유스티노신학교에서는 3년마다 실시되었으나 서울 동성상업학교로 진학하기 시작한 1931년부터는 매년 입학이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33년 성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에 입학하여 2년을 수료한 후 1935년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진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1951년 9월 15일 대구 계산동주교좌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경북 안동본당의 주임 신부로 사제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1966년 2월 15일 마산교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5월 31일 주교 성성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다. 그리고 1969년 4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성유스티노신학교는 1914년 개교, 1945년 강제 폐교되기까지 31년간 16차례의 졸업식(사제서품식)을 가졌으며, 67인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했다. 그중 5명의 주교가 탄생했다.
청나라 황실 의상을 입은 성모자상으로
2014년 중국 사제단 일행이 방문기념으로 기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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