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대교구 공소 86

영민공소(교우촌)/광주대교구

영민공소 (교우촌) 광주대교구 1975년 7월 18일 설립 관할본당: 영광성당 전남 영광군 묘량면 덕흥길2길 4 (덕흥리 387-4번지) ** 1975년 7월 18일영광본당 민수왕 파트리치오 신부가 묘량면 덕흥리 387-4번지에 땅 10,302평을 매입하여 한센병 음성 환자 21명을 정착시키면서 공소가 시작. 당초에는 묘량공소라고 불리었으나 이후 영민공소로 공소명이 바뀌었다. ** 1976년 1월부터 정부양곡을 지원받게 되었고,경남 진주 '작은 자매회'의 수녀들과, 전북 고창 '동해원'의 수녀들로부터 의료해택과 신앙지도를 받았다. 또한 살레시오회의 마 알키메데 신부는 학생들의 장학금을 비롯한 많은 도움을 주고 매월 1회 미사를 봉헌하여 주셨다. 요양을 위해 영광본당에 머물던 서울의 홍신부가 외국잡지에 해..

귀성공소/광주대교구

귀성공소 광주대교구 2014년 11월 9일 설립 관할본당: 진도성당 전남 진도군 임희면 아리랑길 42 2014년 11월 2일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집전으로 석교공소와 함께 쌍둥이 성전으로 축복식을 하였다. 이 지역의 선교는 물론 아리랑 마을을 찾는 이들과 국악인 신자들과 국립남도국악원을 찾는 신자들을 위해 관광사목의 일환으로 신설되었다. 아직 공소 활동을 하지않고 있으나 순례하던 날 중장비로 공소 주변의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소와 국립남도국악원과의 거리는 걸어서 약 850m 정도로 10여분 정도 걸린다.

석교공소/광주대교구

석교공소 광주대교구 1985년 설립 관할본당: 진도성당 전남 진도군 임희면 진도대로 5852 백동 출신 양경욱 빈첸시오가 1940년도에 목포 산정동본당에 다니면서 목수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1953년 양氏 집성촌인 백동으로 오면서 그리스도 복음이 전파된다. 1956년도에 양경욱이 선종한 후 신자들도 도시로 나가면서 신자수가 급감 양경욱 아들 양수길이 간신히 공소의 근맥을 유지하다 군에 입대하면서 신자수가 5명 정도로 줄었고, 그렇지만 1980년 주극현이 공소 부지 매입하고 신자들이 모금하여 1985년 석교공소를 건립할 수 있었다. 현재의 공소는 2014년 11월 2일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집전으로 귀성공소와 함께 쌍둥이 성전으로 축복식을 하였다.

인지공소/광주대교구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인 지 공 소 광주대교구 설립년도: 1900-1904년경 관할본당: 진도성당 전남 진도군 지산면 인지독치2길 19-1 진도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70년경 제주도의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인 신부가 작은 범선으로 목포로 항해하던 중 심한 풍랑으로 조도면 상조도 동구리에 상륙하여 선교와 함께 공소를 개설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1900-1904년 사이 조도면 창유리, 동구리, 지산면 인지리가 같은 시기에 공소를 개설하게 되었다. 인지공소 초기에는 목포본당(현 산정동성당) 초대 주임이였던 드예 신부가 인지리에 개인집을 매수하여, 1909년까지 세례를 베풀고 예비신자 교리를 하면서 다른 두개 공소도 함께 관리했다. 1954년 11월 7일 현 하롤드 주교는 진도군 내의 모든 공소를 산정..

황산공소/광주대교구

황산공소 광주대교구 1982년 9월 26일 설립 관할본당: 우수영성당 1999년 소속 본당이 해남본당에서 우수영본당으로 이관 전남 해남군 황산면 시등로 122-11 1992년 9월 26일 해성식당에서 첫 공소예절을 시작 1984년 4월 김현정 외 5명 세례 받음 1985년 10월 23일 부지 기증 및 매입하여 비닐하우스 공소 건립 1986년 6월 23일 2차 공소 부지 584평 봉헌 1989년 9월 26일 공소 건축 기공식 1990년 2월 공소 건축 완공, 선교사 사택 완공.

신장공소/광주대교구

신장공소 광주대교구 1949년 11월 1일 설립 관할본당: 압해도성당 전남 신안군 압해읍 압해로 399-8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목포본당(현 산정동성당)의 김마리아 회장이 전교를 위해 압해면을 내왕하면서 공소 설립이 준비 되었다. 1949년 11월 1일 압해면 신장리 동초등학교 건너편에 부지 1,031평을 매입하여 공소를 신축 했으며, 안 브레난 교구장이 축복식을 하였다. 공소에 신자수가 많아서 사무장이 근무하고 있을 정도다. 올해 말에서 내년에 걸쳐서 새성전을 건축하려고 건축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다. 새 성전이 완공되면 현 성전은 교육관으로 사용하게 된답니다.

임성공소/광주대교구

임성공소 광주대교구 1954년 설립 관할본당: 옥암동성당 공소 설립시에는 일로성당 관할이였다가 1981년 9월에는 용당동성당으로 관할이 이관, 1992년 1월 하당성당으로 관할이 바뀌었고, 2002년 1월에 옥암동성당으로 관할이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전남 무안군 삼향읍 삼향로 127-5 1952년 3월 임성리의 신자들이 목포본당(현재 산정동성당)의 원 요한 신부를 방문하여 임성리에 교회설립을 요청. 이렇게 태동된 공소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공소예절을 지내다가, 같은해 공소 부지 매입. 1953년 8월 13일 교구로 부터 건축허가를 얻어 1954년 2월 5일 준공식을 가짐.

환학동공소/광주대교구

109년의 역사(2022년 기준)를 지닌 환 학 동 공 소 광주대교구 1913년 12월 8일 설립 관할본당: 일로성당 1913년 설립 당시에는 목포본당(현, 산정동본당) 관할 1956년 5월 일로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설립되면서 일로본당으로 편입 전남 무안군 일로읍 환학길 1 1880년 함평 보아촌에 거주하던 서용호 베드로가 환학동에 정착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 지역에 신앙이 처음으로 전해진다. 1953년에 성당 부지를 매입 가톨릭 구호물자 등이 배급되면서 신자수가 80세개 200명 가량이 되기도 하였다. 1960년도에 환학동공소의 관할지역이 확대되면서 신자수가 400여 명에달하기도 했다 1964년도에는 공소 강당을 증축하기도 하였으나, 1968년 이후로 산업화와 이농현상으로 신자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

강정공소-무안/광주대교구

강정공소 광주대교구 1953년 4월 25일 설립 관할본당: 청계성당 전남 무안군 청계면 강정안길 4-20 1953년 공소에서 나누어 주는 구호물자 덕분에 인근 마을까지 세례를 받아 한때는 신자수가 많았다. 이에 목포 경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정이진 프란치스코가 1956년 4월 무안본당 김정용 안토니오 신부를 찾아가 강정리에 공소 강당을 건립해 줄 것을 건의하여 김신부가 십자고상을 가지고 강정리를 방문하여 공소 부지를 살펴본 후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처음 공소는 마을 서당이 있었던 자리였으나 현 자리에 1957년에 목재건물을 지어 첫 번째 공소 건축, 1998년에 노후화 된 건물을 철거하고 두 번째 공소 건물을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