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교구 공소 89

자천공소/대구대교구

자천공소대구대교구 1926년 설립 관할본당: 영천성당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8길 3-8 (자천리 1806번지) 기와에 그려진 십자가한옥으로 된 옛 자천공소가  공소였음을 보여주는 십자가가 처마 끝에 있다. 위의 공소 사진에서 십자가가 그려진 기와(사각형)는 오른쪽 처마 끝에 위치해 있고,지나가면서 십자가가 보이게끔 골목쪽 처마끝 기와에 세겨진 십자가를 위치해두었다. 자천공소의 시작은 금호 2리(현 화남면 금호동)에 있었던 질구지공소에서부터 시작.지금은 없어진 용평성당의 제2대 주임인 유홍모(안드레아) 신부님 때노경옥(가밀로)이라는 교우가 대구에서 자천으로 이주해 오면서1926년에 공소를 자천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2년 5월에 최재선(요한) 신부님이 부임하시면서 한때 본당으로 승격되기..

부계공소/대구대교구

부계공소대구대교구 관할본당: 군위성당 신희조(요안나)가 부계에 우연히 선산을 마련해놓고 1987년에 이곳으로 이사오면서경주와 왜관에서 정년을 맞은 수녀 친구들이 황무지 같은 부계에 전교를 하자고 뜻을 모음.그 뜻을 모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수녀님은이곳 부계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알리기 시작.신희조(요안나)는 당시 살고 있던 한옥을 교리공부 할 장소로 선뜻 내어놓았다.그날부터 할머니의 집은 부계 공소의 시작이 되었다.어렵사리 시작된 교리 수업을 통해 이듬해 공소에서의 첫 세례식이 이루어졌다.세례식을 시작으로 차츰 신자들도 늘어가면서 부계공소는그 존재를 알리며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다.( 참고: 빛 No.302, 대구대교구) 경북 군위군 부계면 창평1길 21-5 (창평리 989)

직지공소/대구대교구

직지공소대구대교구 관할 본당: 평화 성당(1958년10월25일 평화성당 소속이 됨) 위치: 경북 김천시 대항면 황악로 1692 (복전리 13-1번지) ◉ 지대골공소(직지공소) :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584옛날 지대골에 공소가 있어 지대골 공소라 하였다. 위치는 금릉군 대항면 향천리 직지사 밑에 옹기촌이 있었는데, 박해시대 신자들이 이곳으로 모여와 옹기를 굽고 살면서 신자촌이 형성 되었다. 특히 충청도와 인접한 곳으로 상촌, 황간 등지로 신자들이 피난을 다니면서 살았다.1890년 말 ~ 1900년 초 사이에 순교자의 후손인 서필수(성베네딕도회 서경윤 알벨도 신부의 증조부) 가정과 박정하(박도식 신부의 조부) 가정이 살았으며 1910년에 특히 순교자의 후손인 김수환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 가정이 이곳 지대골 ..

광천공소/대구대교구

광천공소대구대교구 관할 본당: 평화 성당 ***  아래 글은 평화 성당의 카페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곤천공소(광천공소) :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곤천은 추풍령 휴게소 부근의 동편 골짝에 있는 마을로 현재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곤천 등 인근 동네를 통합하여 광천동이라 하고 김천군 봉산면에 편입하였다.곤천 마을은 옛날 박해시대 띠부터 황간 상촌 지방의 신자들과 왕래가 잦았던 교우촌이었으며 신자들은 옹기를 구우며 피난생활을 하였다.병인박해 후인 1890년대 말부터 1900년 초에 최 아나다시아의 부친 최 모 회장과 권시운 가정 등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때 신자 수는 약 100여 명 이었다.1907년 12월에 김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