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성지 29

정산성지/대전교구

정산성지 대전교구 관할 본당: 청양 성당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2길 12-2 정산 성지는 복자 이도기 바오로(1743-1798)가 천주교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한 곳이다. 그는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로부터 시복되어 복자품에 오른 124위 중 제8위에해당된다.. 청양 출신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도기 바오로는 초대 한국 천주교회에서 초석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는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전교하는데 사용하였고 천주교 박해를 피해 홍성, 보령, 은진, 공주 등으로 옮겨다니며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였다. 그가 마지막 머물렸던 곳인 정산에 터를 잡고 옹기를 팔며 많은 이들을 입교시켰다. 충청감사 한용화에 의해 이루어진 정사박해(1797)때 체포되어 -1797년 6월 8일(음)- 1년 동안 ..

새터성지/대전교구

성 최경환, 최양업 신부 생가터 새터성지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1791년 ‘진산사건’으로 박해가 일어나자 최양업 신부의 증조모 경주 이씨는 12살된 아들 최인주를 데리고 충천도 홍주 누곡이라 불리던 청양 다락골로 숨어들었다. 그 후 다락골에서 700여 미터 떨어진 ‘새터’에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였고, 신자들이 모여 들면서 자연스레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최인주는 이곳에서 혼인하여 세아들을 두었는데, 셋째가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이다. 최경환은 15세 되던 해에 새터에서 이성례(이존창의 사촌이자 김대건 신부의 조모인 이멜라니아의 조카)와 혼인하여 장남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을 포함, 6명의 아들을 두었다. 새터에서 생활은 넉넉하였지만 더 깊..

여사울성지/대전교구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앙공동체이자 순교자의 못자리 여사울성지 대전교구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여사울길 22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 사도의 생가 터로 알려져 있는 이곳 여사울은 충청도에서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이존창 사도는 그의 학식과 아름다운 품행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능력으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 왔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존창 사도의 전교로 김대건, 최양업 두 신부의 집안이 입교했다는 사실이다. 김 신부의 할머니가 이존창의 조카딸이며, 최 신부도 그 사도의 생질의 손자이다. 또한, 주문모 신부의 입국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1801년 신유박해 때 공주 감영에서 순교하였다. 이렇게 여사울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

홍주성지/대전교구

충청도의 첫 순교터, 전국 두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홍주성지 대전교구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37-1 홍주는 1784년 한국천주교 창설초기부터 충청도의 첫 신자인 이존창의 영향으로 복음이 활발히 전파된 곳이다. 천주교 신자가 제일 많았던 홍주지역(내포지역)은 행정, 군사의 요충지인 홍주목과 진영이 있던 관계로 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기록상으로만 초기 박해(신해~정사)동안 8명, 이어 중기 박해(신유~기해)동안 4명, 병인박해에 200명이나 된다(총212명). 박해기간(1791~1869) 동안 무명 순교자까지 1,000명이 넘는 순교자를 탄생시킨 거룩한 성지이다. 특히 원시장 베드로는 신해박해 때 홍주 옥에서 세례를 받고 추운 날 동사형으로 순교하여 충청도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 순교자들이 목숨..

대흥봉수산순교성지/대전교구

대흥봉수산순교성지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길 25-14 대흥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복자 김정득 베드로가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마을이다. 대흥 봉수산 성지와 연고가 있는 순교자는 복자 김정득 외에 황 베드로, 백청여, 원지우 안드레아, 이 루도비꼬, 이 아우구스띠노 등이 있다. 복자 김정득은 예산에서 순교한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와 함께 ‘의좋은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두 순교자는 고향이 서로 달랐으나 공주 무성산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하다가 신유박해가 일어나 체포되었다. 그들은 예산, 홍주, 청주를 거쳐 한양까지 이송되며 여러 차례 형벌을 받으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고향으로 보내어 처형하라는 지시에 따라 1801년 8월 두 순교자는 예산까지 함께 내려왔으나 김정득은 대흥으로 보내졌다. 헤어..

솔뫼성지/대전교구

한국의 베들레헴 솔뫼성지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증조부 김진후 비오(1814년 해미에서 순교), 종조부 김종한 안드레아(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46년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솔뫼 성지는 2014년 9월 국가지정문화재 제529호로 지정되었다. ▼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경당

성거산성지/대전교구

박해시대 형성된 교우촌, 선교사들의 사목중심지, 순교자들의 묘역(줄무덤) 성거산성지 대전교구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 성거산 일대는 180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들이 곳곳에 있었다. 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신자들이 신분을 감추고 생활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학의 둥지와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소학골과 인근의 서들골을 중심으로 여러 교우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산골 신앙공동체였다. 성거산 교우촌은 산골이면서도 주변의 다른 신앙공동체들과 연락을 취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성거산에 와서 휴식과 사목활동을 하며 편지를 작성하여 본국으로 보냈고, 주변의 공주와 서천, 충북 배티, 경기도와 경상도의 교우촌들과..

신리성지/대전교구

조선 천주교회의 요람이며 다블뤼 주교 유적지 신 리 성 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 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내포지역의 천주교는 1784년 여사울 출신의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

공세리성지,성당/대전교구

순교로 지켜온 130년의 믿음 터 공세리성지, 성당 대전교구 1890년 설립 1890년에 설립된 130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공세리성지ㆍ성당은 합덕성당과 더불어 충청도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144호이다.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성종 9년(1478년)부터 영조 38년(1762년)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지인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써 내포지역은 한국천주교회의 신앙의 못자리라 불릴 만큼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중심지였다. 공세리 성당에는 1801~1873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하신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 성지이다. 공세리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