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교구 공소 102

어은동공소/전주교구

1900년 진안지역 첫 본당으로 설립된어은동공소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8호(2002년 5월 31일  지정)전주교구 1888년 설립 관할본당: 진안성당 전북 진안군 진안읍 어은동길 23 1876년경 진안 일대에는 병인박해(1866년)를 피해충청도 등지에서 전라도 산중으로 피난 내려온 신자들이삼바실, 절골, 모시골, 절번덕이 등에 흩어져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부근의 신자들이 어은동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어은동 공소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뮈텔 주교는 보두네 신부의 뜻에 따라 전주(現 전동) 본당 관할이었던어은동 공소를 1900년 9월 22일 전주본당에서 분가해 본당으로 설립 2대 주임 이상화(발토로메오)신부는1922년 6월 본당 발전을 위해 전교 전망이 큰 한들 공소로 본당을 옮겼다.어은동 본당이 한들 ..

수항공소/전주교구

수항공소 전주교구 1890년 설립 보두네 신부가 살립 관할본당: 진안성당 전북 진안군 부귀면 대곡길 91-4 병인박해 후 충청도 신자들이 피난 와서 세운 교우촌 처음에는 옛 지명을 따 한실골 공소로 불리어졌으나 나중에 행정구역을 따라 수항 공소로 바뀌었다. 1986년 10월 19일에 부지를 매입해 신축공사에 들어가 그해 11월 16일에 20평 규모의 시멘트 블록 건물을 완공하였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일부 발췌)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머우내공소(터)/전주교구

머우내공소(터) 전주교구 1900년대 초 설립 관할본당: 진안성당 전북 진안군 진안읍 죽산로 47 (죽산리 92) 머우내공소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어은동성당으로 다녔고, 1941년 1월 7일에 내오천[머우내]공소가 단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지면서 머우내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984년 석고개성당(현, 평촌공소)이 신축 봉헌되면서 머우내공소는 석고개성당으로 편입된다. 지금은 관할본당인 진안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고 있다. 2022년 5월에 공소 강당이 철거된 후 터만 남아있다(자갈로 덮어 놓은 곳) 철거되기 前 머우내공소의 모습 머우내 공소가 있는 내오천 마을 모습. 내오천마을을 ‘안머우내’라고도 불린다. 머우내공소에서 어은동공소까지의 거리는 약 3km 정도이고 차로 5분 정도, 걸어서 50분 정도의 거리..

두원공소/전주교구

설립해서 현재 2023년까지 127년 역사를 지닌 두원공소 (斗元公所) 진안군 향토문화유산 유형 제12호 전주교구 1897년 설립 전주본당(현,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에 의해 설립 관할본당: 진안성당 상량문에 보면 '천주강생 1957년 음력 10월 6일 상량' 이라고 되어있다 1957년에 공소 강당을 신축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공소강당을 사용하지 않고 관할본당인 진안성당으로 가서 미사참례를 한답니다. 1988년에 성모상을 축성하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2006~2007년경 함석지붕을 강판으로 교체하였다.

동구점공소/전주교구

동구점공소 전주교구 1972년 설립 관할본당: 진안성당 전북 진안군 오천리 1192 2005년에 엄청난 비로 공소 강당이 주저 앉았고, 성모님상만 남았답니다. (前 공소회장 말씀) 이제는 마을에도 몇 집만 있는 상태이고, 신자로는 두사람만 있고, 두사람은 관할본당 진안성당으로 가서 미사참례를 한답니다. 공소 강당은 흔적도 없지만 지금도 성모님 옆에는 꽃이 피어 있네요. 성모님상 앞 밭이 공소 건물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부귀공소/전주교구

부귀공소 전주교구 1976년 설립 관할본당: 진안성당 전북 진안군 부귀면 부귀로 313-18 부귀공소건물이 생겨나는 데에는 1988년 용담공소를 신축하기 위해 추진 중에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었고 1996년 11월 3일에 용담공소 수몰에 대한 보상금을 받게된다. 부귀면 상거석마을에 거주하였던 교우가 용담공소의 수몰 보상금으로 부귀면 소재지에 공소 설립을 건의하여 교구청에 허가를 받아 건축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지어진 공소 건물이 부귀공소랍니다. 1997년 6월 29일 이병호 주교(전주교구 제7대 교구장) 주례로 공소 축복식을 가지게 됩니다.

하동공소/전주교구

하동공소 전주교구 1954년 설립 관할본당: 장수성당 전북 장수군 번암동 하동1길 1 병인박해를 피해 전라도 신자뿐 아니라 서울, 경기도, 경상도 진주, 문산 등 전국 각지에서 피난와 산골짜기에 흩어져 숨어 살다가 박해가 끝나자 자연스레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첩첩산중이라 화전을 일구고 닥나무를 벗겨 한지를 만들어 장날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는 공소 건물이 없던 시절이라 신자 집에서 남자는 안방, 여자는 건넌방에서 공소 예절을 했었다. 6.25 전쟁 후 옷, 옥수수가루, 우유가루 등 구호물자를 배급받아 힘든 시절을 견디었다. 1954년 김수일 분도 초대회장이 공소터를 희사하여 구호물자를 팔아 기금을 마련하고 전신자가 부역을 하여 산에서 돌을 날라다가 공소를 신축 (전주교구 홈페이지에서 벌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