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의 선교 준비 거점이자 성 도리 헨리코 신부님이 체포된 곳
손골성지
수원교구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437번길 67
손골성지는 광교산에 있던 교우촌이다.
박해 시대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기해박해(1839년) 전후에 서울 가까이로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룬 것을 생각할 때
손골 교우촌도 이 시기에 형성된 것 같다.
손골 교우촌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는 곳이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피정도 하고 쉬기도 하였다.
손골에서는 특별히 聖 도리 신부와 聖 오메트로 신부를 기념한다.
그리고,
손골에 살다 1871년 5월 좌포청에서 아들 이 베드로, 손자 이 프란치스코와 함께
삼대(三代)가 순교한
이요한이 특히 유명하다.
성당 내의 성모자화(이인숙 요셉피나 작)
성지 성당 입구에 걸린 선교사들의 출발 모습을 그린 그림.(샤를르 쿠베르탱 작품)
조선으로 파견되는 브르트니에르, 도리, 볼리외, 위앵 신부의 파견예식을 그린 것.
네 분 모두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셔서 성인품에 오름.
순교자들의 길
성당 옆 성모상 주변에 조성된 순교자들의 길은 7처까지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과 같은 형식으로 기도를 바칩니다.(성지 순례기도책 참조)
윗줄 왼쪽부터 |
우측 동상은 성 오 메트로 신부, 좌측 동상은 성 도리 헨리코 신부이다
성 오메트르 신부상
오메트르 성인은 약 32개월의 조선 선교기간 중
손골에서 15개월을 생활하며 손골과 미리내 인근 교우촌을 사목.
성 도리 헨리코 신부
성 도리 헨리코 신부는 1865년 5월 27일 조선에 도착한 후
손골 교우촌에서 한국말을 배우며 지내던 중 1866년 2월 병인박해 때 자수하여 체포된 후
3월 7일 새남터에서 순교.
사진 중앙의 계단을 올라가면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다.
무명순교자 묘
2013년 수원교구는 그동안 미리내 성지에 안치되었던 손골의 무명 순교자 4위를 파묘해 손골 성지에 옮겨 안치하였다.
옮겨 안치한 무명 순교자 4위는 병인박해 때 수원으로 끌려가던 중 서봉 인근 개울가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이다.
순교자들의 이름과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인근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해 돌무덤을 만들어 '서봉부락 순교자 돌무덤'으로 불려왔다
도리 신부 순교현양비
맨 위의 돌 십자가는 축복 당시 성 도리 헨리코 신부의 고향에서 보내온 것입니다
주차장 앞 지붕이 약간 높은 곳이 손골기념관, 우측이 성지성당, 성지성당 뒤 벽돌집이 사제관,
사제관 뒤로 무명순교자 묘역, 좌측 단층 건물이 피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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