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교구 성지

광희문성지-서울대교구

오안드레아 2023. 12. 1. 22:07

수많은 순교자의 시신이 버려지고 묻힌 광희문 밖 거룩한 터

광  희  문  성  지 

서울대교구

 

광희문(사적 제10) : 서울 중구 퇴계로344(광희동2105-32)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 서울 중구 퇴계로 348(신당동 228-17)

 

 

기억해야 할 인물

성녀 김임이, 성녀 우술임, 성녀 정철염, 순교자 송백돌

 

 

광희문은 조선 시대 서울의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광명의 문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서울 성곽 안에는 묘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시신을 서울 외곽 밖으로 가지고 나가 묘를 써야 했는데,

이때 서소문과 광희문을 통해 시신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런 이유로 광희문은 시신을 내어가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광희문 밖은 박해시기에 서울의 좌·우포도청 옥과 형조의 전옥 등에서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그들 가운데794위의 순교자 시신이 버려지고 묻힌 곳이다

(서종태,광희문성지의 실체 규명과 순교자 영성,1회 광희문성지 학술심포지엄, 2017.11.25참조).

이들794명의 순교자들 가운데

54명은 신유박해(1801)~병오박해(1846)시기에,

나머지740명은 병인박해(1866)~기묘박해(1879)시기에

각각 서울의 좌·우포도청 옥과 형조의 전옥 등에서 순교하였다.

대부분 병인양요(1866),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신미양요(1872)등으로

거듭 박해가 격화되던 때에 순교한 신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이들794명의 순교자들 중 거주지가 확인되는750명 가운데

서울 신자는309,충청도 신자는213,경기도 신자는158명 순이었다.

이어 강원도 신자가39,황해도 신자가13,경상도 신자가12,평안도 신자가3,

함경도 신자가2,전라도 신자가1명이었다.

이처럼 서울·충청도·경기도 순으로 거주자가 많은 것은

박해를 격화시킨 병인양요의 진원지가 서울이었고,

남연군묘 도굴 사건이 충청도 덕산에서 발생했으며,병인양요가 경기도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을 당한 김임이 데레사, 우술임 수산나,

정철염 가타리나 성녀의 시신은 광희문 밖에 버려진 후 신자들이 거두어 매장하였으며,
1867년에 포도청에서 순교한 송백돌 베드로의 시신 역시 광희문 밖 성벽 밑에 묻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출처: 서울대교구 홈페이지)

 

 

 

광희문이라고 현판이 보이는 쪽이 도성 밖이고, 시체가 버려진 곳이다

 

광희문 뒤쪽의 모습으로 이쪽이 도성 안쪽이된다.

도성 안쪽에서 광희문(시구문)을 통해 도성 바깥으로 시체가 버려졌고,

시체가 버려진 곳에 어쩌면 필연적으로 순교자 현양관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광희문과 순교자 현양관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
순교자 현양관 1층에 있는 성모상

 

순교자 현양관 3층에있는 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