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대교구 성지

나주순교자기념성당-광주대교구 성지

오안드레아 2024. 2. 24. 09:13

나주에서 순교한 네 순교자의 위대한 신앙을 기리는

나주순교자기념성당

광주대교구 성지

 

전라남도 나주시 박정길 3


공주 출신 이춘화는 1839년 기해박해 때 나주에서 순교했고, 전북 용담 출신 강영원과 경상도 출신 유치성, 전남 장성 출신 유문보는, 1866년 병인년에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령을 내리면서 시작된 병인박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871년에 나주 진영으로 잡혀 왔다.

유문보는 모진 고문 때문에 1872년 옥사로 순교하고, 강영원과 유치성은 1872년 나주 진영 무학당(현 나주 초등학교) 앞에서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 순교하였다.

순교자 기념 성당이 있는 나주 성당 내에는 나주 성당 초대 주임이자 광주대교구 제5대 교구장을 역임한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이 있으며, 3년 동안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역사 기념관으로 복원하여 초기 수도자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나주성당

 

주보성인: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1935년 5월 설립

 

 

 

▼나주 순교자 기념 경당

나주성당 내에 있는 순교자 기념성당은

기해박해 때인 1839년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 베드로와

병인박해 때인 1872년에 순교한 강영원 바오로, 유치성 안드레아, 유문보 바오로 등

네 분의 믿음과 삶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무덤 형태의 경당이다.

 

입구의 60톤 거석은 그분들이 당하신 석침형(石針形)과 백지사형(白紙死形)을 의미하고,

 

관형식의 제단은 그분들의 죽음을 의미하고,

사벽이 닫힌 공간은  그분들이 겪은 사면초가의 극한상황을,

열린공간은 일편단심 천주님을 향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상징화한 경당 내부의 텅빈공간과 어둠은

순교자들의 비움과 버림과 죽음을,

외부의 자연과 밝음은 순교자들의 충만과 사랑과 부활을 드러낸다.

 

 

주위의 대나무는 그분들의 절개를 말해줍니다.

순교자의 기도상

 

순교자 경당과 순교자의 기도상
경당 앞 마당의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시작기도 왼쪽의 하얀돌이 무학당의 주춧돌이다.

 

 

▼순교자 묘원

나주에서 순교한 네 분의 가묘가 있는 곳이다.

이춘화: 공주 출신, 기해박해(1839년) 때 나주에서 순교

강원영: 전북 용담 출신,병인박해(1866년) 때 나주 진영 무학당 앞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

유치성: 경상도 출신, 병인박해(1866년) 때 나주 진영 무학당 앞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

유문모: 전남 장성 출신, 병인박해(1866년) 때 나주 진영으로 잡혀와서 1872년에 옥사로 순교

이춘화: 공주 출신, 기해박해(1839년) 때 나주에서 순교

유문모: 전남 장성 출신, 병인박해(1866년) 때 나주 진영으로 잡혀와서 1872년에 옥사로 순교

강원영: 전북 용담 출신,병인박해(1866년) 때 나주 진영 무학당 앞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

유치성: 경상도 출신, 병인박해(1866년) 때 나주 진영 무학당 앞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

 

 

 

▼무학당 조형물

무학당은 군사시설인 나주진영 안에 있던 훈련과 관련된 건축물이고, 무학당 위치에 나주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무학당 순교터는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만다. 그러나 주춧돌 12개가 남아 있었고,나주의 네 분 순교자를 현양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그 중 10개를 나주성당으로 옮겨와 이 무학당 조형물의 주춧돌로 8개를 사용하고, 2개는 경당 주변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 시작하는 곳에 놓아 두었다.

 

무학당 조형물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

현 하롤드 대주교님은 나주 성당 초대 주임이자 광주대교구 제5대 교구장을 역임하셨다.

순례했던 시간이 늦어서 내부 관람을 못해서 아쉬웠다.

개방 시간에만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1956년 당시 제5대 광주 교구장이었던 현 하롤드 몬시뇰의 요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까리따스 수녀회의 최초의 본원이자 지원원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성당의 전교활동과 구호물자 배급으로 신자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던

이곳에 파견되어 한국 까리따스 수녀회의 씨앗이 된 수녀들과 지원자들이 사용하였다.

이후 1959년 본원이 광주 학동으로 옮겨졌다.

(관람일시: 화,수,금,토,일, 오전10~오후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