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교구 공소 58

여의리공소/마산교구

여의리공소마산교구 관할본당: 창녕성당 경남 의령군 낙서면 낙동강로 989-25  여름답게 무더웠다주소만 달랑들고 네비에 의지해서 도착해보니기대했던 종탑이나 십자가 보이지 않아서마을 주민에게 확인해보니네비가 일러준 곳이 공소라고 말씀해 주신다. 조용히 마당으로 들어가는 데벽에 교우패가 보여서 반가웠다. 흔히 보는 가정집이였다. 안채에서 묵주기도를 하고 있는 자매님은 뒤에서 불려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셨다.밖에서 같이 묵주기도를 했다.나중에서야 인기척을 느끼고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여름에 더울 때에는 에어컨이 있는 이곳에서 공소예절을 하기도 했고,때로는 안채에서도 공소예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9년 전(2014년)에 형제님이 세상을 뜨고 부터는 공소활동이 정지되었다고 합니다.지금은 모두 창녕본당에서 미사..

칠곡공소/마산교구

칠곡공소 마산교구 1960년 설립 관할본당: 의령성당 경남 의령군 칠곡면 칠곡로2길 51-2 점심시간이 막 지나고 무더위가 한창인 때 공소안으로 들어서는 데 인기척이 있어서 대면은 아니였지만 사람에게 놀라기 전에 이쪽에서도 인기척을 내면서 인사를 대고 했더니만 밖으로 나오시면서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알고보니 막달레나 선교사였다. 기도를 하고 돌아앉는 데 선교사께서는 막 삶았다면서 감자를 한 접시 내미셨다. 점심먹은 지가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는 데도 그 감자를 다 먹었다. 맛도 좋았지만 정은 더 좋았다. 공소에 딸린 밭에서 캔 감자라고 하신다. 찐 감자를 다니다가 출출할 때 먹으라면서 봉지에 담아주시기 까지 하셨다. 따뜻한 가슴을 담아 주신 것이니라! 급격한 도시화로 지금은 공소 활동이 없고 ..

욕지공소-욕지도/마산교구

욕지공소마산교구 1902년 설립 관할본당: 태평동성당 경남 통영시 욕지면 서촌윗길 20 (욕지도)  ---  욕지공소연혁  ---1902년 이만영(안드레아) 욕자도로 이주, 전교활동1933년 욕지면 자부마을 영석개 가정집에서 공소예절(본당 신부 방문 미사)1953~1957년 자부마을 가정집 매입 이전1967년 서촌 추요한 가정으로 이전1991년 현 위치 공소건물 신축2014년 도유화로 건물 리모델링2016년 십자가의 길, 성모동산 건립      아래의 십자가의 길은 공소 강당 내의 것으로 이것 또한 도유화로 되어 있다.

사량공소/마산교구

사량공소 마산교구 1909년 설립 관할본당: 대건성당 경남 통영시 사량면 진촌2길 15-11 (사량도) 사량도에 입항하는 배에서 보이는 사량공소 예수님. 박해를 피해 신자들은 숨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 곳이 남해안의 섬 이었다. 1909년 하동 진교 낭포마을 에서 입교한 김재관 마티아가 사량도로 이주해보니 이미 그곳에는 이름도, 본명도 알 수 없는 노파교우가 살고 있었다. 진주 문산의 외국인 신부가 성사를 베풀기 위해 사량도를 방문하고 있었다. 초대 회장을 맡은 김 마티아는 열심히 성사 생활을 하였고, 열성적으로 전교하여 신자수가 날로 늘어남에 1940년에 김 마티아는 사비로 공소를 마련하고 교구에 기증하였다. 시간이 흘러 일제시대에 지은 공소는 기둥이 썩고 비가 새고하여 1..

황리공소/마산교구

황리공소 (국가등록문화재 제734호) 마산교구 1893년 설립 관할본당: 고성성당 경남 통영시 광도면 황리임내길 100 1935년 6월 황리공소는 고성지역 첫 본당이 된다. 황리본당 초대 주임은 명례성지 신석복 마르코 순교자의 손자 신순균 신부였다. 황리공소에 관한 첫 기록은 1897년 부산 초량 '우도'신부의 보고서다. 교우수 17명, 예비자 3명이었다. 당시 고성에는 계동(기월리), 장동, 황리공소가 있었다. 거제와 남해안 일대에 흩어져 살던 교우들이 육로와 뱃길이 용이한 황리지역으로 병인박해와 무진박해 직후에 숨어들었다. 황리는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뱃길의 요지였어 기월리 보다 고성지역 첫 본당이 되는 이유였다. 하지만 자동차의 등장으로 뱃길에 의존하던 교통이 육로로 바뀌자 상권이 기월리 쪽으로 ..

쌍백공소/마산교구

쌍백공소 마산교구 1890년경 설립 관할본당: 합천성당 경남 합천군 쌍백면 쌍백중앙로 42-4 쌍백면 평구리의 옆 마을 평지리에는 오래된 고무정 교우촌이 있었다. 1893년 죠조 신부의 교세 통계표에 등장한다. 당시 교우수는 36명이었다. 죠조 신부는 부산 초량성당 초대 신부였고 이 지역은 그의 관할이었다. 죠조 신부가 방문하기 전 이곳에는 이미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박해를 피해 황강을 따라 경북에서 내려온 피난교우들이었다. 고무정 교우촌은 쌍백공소의 모태가 되었다. 현대의 공소 건물은 1974년 정삼규 요한 신부 때 봉헌되었다. (출처: 마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삼가공소/마산교구

삼가공소 마산교구 1880년경 설립 관할본당: 합천성당 경남 합천군 삼가면 일부5길 19 삼가공소는 합천군 산가면 어전리에 늘밭공소와 용호리 황새골 공소가 모태가 되었다. 1883년 로베르 신부의 교세통계표에 늘밭 18명, 황새골 20명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곳에 박해시절부터 신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 삼가공소 자리는 창녕본당 공소 시절 정순구 신부께서 설립하셨고, 다시 1965년 합천본당 공소가 되면서 공소 터를 매입하였고 1968년 공소건물을 봉헌하였다. 1900년대 초 타케 신부가 완월동성당 터를 매입할 때 삼가공소 회장의 명의로 매입한 것으로 보아 삼가공소의 역활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마산교구 평신도사도협의회) '계미년에 상량한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9..

야로공소/마산교구

야로공소마산교구 1956년 설립거창 가북면의 박암리 공소와는 이웃하고 있어박해시대에 신앙이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1956년 야로면 구정리의 하판구 토마스 회장집에서 첫 공소예절이 시작되었다. 관할본당: 합천성당 경남 합천군 야로면 시장길 10-15  '성당 내 고요히'공소 강당 벽에 걸려있는 글을 보는 순간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