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교구 공소 102

죽림공소-정읍/전주교구

을해, 정해박해 때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의 교우촌 2023년 현재 138년의 역사를 지닌 죽림공소 (정읍) 전주교구 1885년 설립 리우빌(아나톨,1855-1893, 유달영,) 신부 활동 당시에 설립. 관할본당: 시기동공소 전북 정읍시 첨단과학로 698-61 세월의 무게로 벽이 허물어지고 있고 공소 앞에 사시는 신자가 지붕과 벽을 보강해서 유지하고 있다. 을해(1815), 정해(1827) 박해 때 충청도에서 이주해 온 교우들로부터 시작된 공소는 처음에는 마을 사랑방에서 미사를 보았으며, 1930년대에 초가로 공소를 지었다. 6.25 전쟁 때 교우들이 빨찌산이 공소를 고문실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소시키고 피난을 갔다. 성모님상이 비를 맞아 이끼라도 생길까봐 공소 앞 신자가 덮게를 설치하였다고 ..

등천공소/전주교구

2023년 현재 128년의 역사를 지닌 순교자 후손들이 모여서 이룩한 교우촌 등천공소 전주교구 1895년 설립 라크루 신부(마르첼리노, 구마슬 具瑪瑟, 1871-1929) 때에 설립 관할본당: 시기동성당 전북 정읍시 원등2길 26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 신자들이 이주해 와 이루어진 교우촌으로 1839년 순교한 조 안드레아,1866년에 순교한 조화서 베드로,조윤호 요셉 성인의 후손과 1866년 공주에서 순교하신 서정식 요한의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1920년에 포교소 설치 허가가 나와 1924년 11월 4일 드망즈 주교가 4칸 겹집인 경당을 축성하고, 14처를 설치하였으며 주보성인은 성 요셉으로 삼았다. 1950년 6.25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빨치산들에 의해 소실되었다. 이때 성경공부를 ..

옥단공소/전주교구

옥단공소 전주교구 관할본당: 신태인성당 전북 정읍시 감곡면 옥신2길 17 1925년경에 김봉석(베드로, 초대 공소회장)형제가 회문산에서 가족을 데리고 옥단 마을로 내려와 살면서 신앙의 씨앗이 뿌려져 공소를 이루게 되었다. 이 마을은 전통적으로 유교의 관습을 지키는 곳이라 전교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김 베드로 형제의 끈질긴 노력으로 공소의 터전이 이루어졌다. 그는 수류성당에서 온 전교사와 함께 옥단에 살고 있던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전교를 하였다. 초기에 그는 신자들과 14km 떨어진 수류성당까지 걸어가서 대축일 미사에 참여했고 주일에는 진흥공소(옥단공소에서 4.1km)에 가서 공소예절을 하였다. 그 후 신자 수가 증가하자 진흥공소에 가지 않고 김 베드로 형제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였다..

진흥공소/전주교구

진흥공소 전주교구 관할본당: 신태인성당 전북 정읍시 감곡면 석점1길 43-1 진흥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였으나 생활이 어려워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신자들은 1년에 4번, 대축일에 성당으로 미사를 가는 것이 교회 활동의 전부였다. 석점마을에 신자들이 활성화된 것은 정읍시 산내면 삼바실에 살던 방흥석(안드레아, 초대 공소회장) 형제가 이사 오면서부터였다 이곳은 점토가 많이 나와 점촌이라고도 하였는데 옹기그릇을 만들기에 적합하여 방흥석(안드레아, 초대 공소회장) 형제가 이사 오면서 공장을 세우고 옹기를 만들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옹기를 팔아 생계유지에 큰 도움을 받았고, 또한 적극적인 전교 활동으로 신자 수가 늘자 자신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고 판공 때는 미사도 드렸다. 그 당시..

태인공소/전주교구

태인공소 전주교구 관할본당: 신태인성당 전북 정읍시 태산로 2924 1935년 능교본당이 태인면으로 본당을 이전하면서 태인본당이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본당으로 출발하였다가 다시 한번 본당을 신태인 지역으로 옮김으로써 신태인성당이 설립되고, 태인성당은 1955년 공소로 전환되었다. ▼태인공소(처음에는 태인본당) 구건물 능교본당이 1935년에 태인으로 이전하면서 1938년에 건축한 태인성당 상량문에 '서기 1938년 4월 18일'이라고 씌여있다. 능교본당이 태인으로 본당을 옮기고 주보 성인을 소화 데레사 성녀로 정하면서 태인성당이 설립되었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본부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새로 마련한 현 공소 새 공소 건립의 꿈은 2012년 이재방(요셉) 선교사가 부임하면서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다. 19..

신기공소/전주교구

신기공소 전주교구 관할본당: 신태인성당 전북 정읍시 태인면 거산신기1길 101 1934년 ‘동구내’에서 살던 천주교인 세 가구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정착한 것이 시초이다. 이때부터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기(새터)’라는 이름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뒤 동구내의 김종현 형제가 이주하면서 친척들과 교우들이 연락되어 1939년 다섯 가구가 이주해 들어왔다. 한국전쟁 당시 정읍, 순창 등지의 산골마을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하자 이 마을로 많은 이들이 피난을 왔다. 당시 신자 가구 수만 60가구가 되어 인구 300여 명의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교우들이 많다 보니 공소회장 집에서 드리는 공소예절이 여간 복잡하고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우리 힘으로 성당을 짓자.”라는 의견을 모은 것이 신기공소 건립의..

신평공소/전주교구

신평공소전주교구 1952년 설립 관할본당; 연지동성당설립 당시에는 정읍성당(현 시기동성당) 관할이였다가1985년 연지동성당이 설립되면서 연지동성당으로 이관. 1948년 정읍 신평리로 이주해온 김기만(타대오)형제에 의해 신앙의 불씨가 지펴졌고,1952년에는 97명의 예비신자가 세례를 받으며 신자수가 119명에 이르기도 하였다.공소 설립 초기(1959년)에는김기만 회장의 집을 매입하여 미사와 공소예절을 드리다가1976년에 새 공소 건물 대지를 매입하여 1977년 8월, 지금의 공소건물을 준공하였다. 전북 정읍시 북면 동신2길 16

한교공소/전주교구

한교공소 전주교구 1947년 설립 관할본당: 연지동성당 설립 당시에는 시기동성당 관할이었다가 1985년 연지동성당이 설립되면서 연지동성당으로 이관 한교공소는 1920년경 화산 나바위성당의 신자였던 교우 몇 가구가 한교리로 이주해서 정착하여 지내다가 1947년 공소를 설립하고 이경원 회장의 가정집을 공소로 사용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여러분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제대로 된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제4대 공소회장인 김 발도로메오 형제가 주축이 되고 한교공소 주위의 공소신자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고 낮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성당의 돌을 하나하나 직접 쌓아 현재의 공소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 정읍시 북면 북신촌2길 9-7 (한교리 49-19)